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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의 神 꿈꾸는 먹거리 덕후들, 구름손님 모았다

입력 | 2017-08-29 03:00:00

[청년사장 전통시장 진출기]<4> 춘천 육림고개 ‘3色점포’




강원 춘천의 육림고개는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재래시장엔 점포들이 즐비했고 사람들은 고갯길을 넘어 장을 보고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닭갈비 골목이 자리한 중앙시장에 밀려났다. 2010년 즈음엔 생선가게, 약재상 등 몇몇 가게만 겨우 남았다.

반전은 3년 전 시작됐다. 춘천시는 육림고개의 부활을 위해 벼룩시장을 열었다. 전국 각지에서 청년 덕후(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뜻하는 ‘오타쿠’를 이르는 말)들이 이곳을 찾아 물건을 팔 수 있도록 했다. 고갯길은 다시 사람들로 채워졌고 중소기업청, 춘천시 지원으로 16개 ‘청년점포’가 작년 초부터 정식 영업을 시작했다. 친환경 농산물 밥상, 수제 꽃 막걸리, 무지개식빵 등 ‘덕질’의 결실이 가득 찬 육림고개를 25일 찾았다.

○ 농사 덕후 청년들이 제철밥상 차려드립니다


직접 지은 식재료로 제철음식을 만들어 파는 ‘어쩌다 농부’는 청년농부 3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친환경 한식집이다. 한상연 씨는 “처음엔 시행착오가 많았는데 동종 업계 선배들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았으면 수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노보원, 한상연, 김은희 씨. 춘천=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흔치 않은 덕후다. 농사짓기가 취미, 특기는 좋은 농산물 가려내기다. 학창 시절 농사라는 교집합으로 알게 된 세 명의 청년 한상연(29), 노보원(23), 김은희 씨(29) 이야기다.

‘농사 덕후’가 된 세 사람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다. 한 씨는 강원 철원에서 벼와 토마토를 기르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농산물 유통’에 뛰어들었다. 한 씨는 “아버지가 공들여 키우신 자식 같은 농산물을 어떻게 하면 좋은 값에 팔 수 있을까 고민하다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아픈 어머니를 보살피느라 ‘좋은 먹거리’에 눈을 뜨게 됐다는 노 씨는 “어머니가 드시는 음식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떻게 관리되는지 알고 싶어서 찾아본 게 시작이었다”고 했다.

이들이 차린 밥상은 확실히 남다르다. 직접 키운 유기농 농산물에 제철에 먹어야 맛있는 식재료만 활용한다. 여름철을 맞아 판매 중인 요리는 여름 채소를 활용한 된장덮밥과 파스타, 토마토와 닭고리를 넣은 커리다. 노 씨는 “지난해 11월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 들깨가 제철이어서 국산 들깨를 통으로 갈아 수제비를 만들었는데, 아직도 많은 분이 수제비 맛 때문에 찾아 오신다”고 말했다.

청년농부이기도 한 이들은 춘천시 서면 신매리 근처에 직접 쌈 채소, 방울토마토, 허브, 토종 옥수수를 키우고 있다. 내년엔 수박, 참외, 호박도 재배할 예정이다. 한 씨는 “올해는 식당일 하느라 밭 관리를 못했는데, 조만간 밭 근처로 이사를 가 출퇴근하면서 밭 관리도 함께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농사짓고 요리하고 메뉴 개발하느라 셋이 달려들어도 ‘초과근무’는 기본이다. 이 때문에 그들의 꿈은 ‘9시 전에 퇴근하기’다. “매일같이 오전 8시 출근, 새벽 1시 퇴근입니다(일동 탄식). 일이 손에 익으면 ‘9시 칼퇴’ 가능하겠죠?”

○ 식빵 덕후 부부가 구워낸 무지개식빵

오징어먹물, 천연색소로 무지개식빵을 만들어 파는 ‘꼬삔이식빵’의 권성기 씨는 “다섯 살 난 딸아이가 먹는다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굽고 있다”고 했다.

부부는 그냥 빵이 아닌 식빵이 좋았다. 그들에게 잼과 버터는 식빵 본연의 맛을 가리는 장애물에 불과했다. 식빵 맛집 투어가 취미였던 부부는 인터넷에서 한 식빵을 발견했다. 대만에서 만들어진 ‘수박모양 식빵’이었다. 남편 권성기 씨(38)는 이를 보고 천연색소와 오징어먹물을 활용한 ‘무지개 식빵’을 만들었다. 권 씨는 “춘천에는 식빵만 파는 곳이 없어 춘천을 대표하는 식빵 맛집을 만들어 보자며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원래 권 씨는 아내와 함께 서울 북촌에서 한지공예품을 만들어 팔았다. 평화롭던 이들에게 2년 전 시련이 닥쳤다. 주인이 건물을 팔아버려 가게를 비워야만 했다. 권 씨는 “권리금도 무척 비쌌는데 새 주인이 나가라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막막해서 처가가 있는 춘천으로 온 것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춘천 외곽에 공방 겸 카페를 차려 운영하던 부부는 무지개식빵을 개발했고, 청년상인 지원사업에 선정돼 ‘꼬삔이식빵’을 열었다.

밤과 치즈가 들어간 무지개식빵 말고도 녹차, 팥, 딸기잼이 들어 있는 식빵을 먹기 위해 주중엔 30명, 주말엔 50명 이상이 그의 가게를 찾는다. “어제는 대구에서 오신 분이 인터넷 보고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되게 신기하면서도 감사하죠.”

10평 남짓 자신의 공간을 갖게 된 그에겐 작은 꿈이 있다. “솔직히 다른 꿈은 없고 한곳에서 오래 했으면 좋겠어요. 물 좋고 자연도 예쁜 이곳에서 그냥 오랫동안 맛있는 식빵을 굽고 싶고…. 그게 전부예요.”

○ 술 덕후 여대생이 차린 사랑방 같은 막걸리주점

막걸리를 넘어 전통소주, 약주, 우리 포도로 만든 와인까지 다 취급하고 싶다는 이은주 씨는 “촌스럽게만 여겨지는 우리 술을 세련된 와인 바 같은 데서 팔고 싶다”고 했다.

주량이 소주 한 병 반인 여대생은 늘 자기만의 주점을 갖고 싶었다. 스무 살 때부터 패밀리레스토랑, 호텔, 이자카야, 카페 등에서 쉼 없이 일했다. 능력을 인정받아 한 칵테일 바에서는 점장까지 했다. 와인을 좋아해 소믈리에 자격증도 땄다.

그런 여대생 이은주 씨(27)에게 기회가 왔다. 마감 하루 전 알게 된 청년상인 모집. 6시간 만에 급하게 사업계획서 10쪽을 써냈다. “수년간 이쪽에서 일하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었는데 그걸 글로 풀어냈을 뿐인데…. 운이 좋았어요.”

지난해 경기 가평에서 열린 ‘막걸리 페스티벌’에서 이 씨는 막걸리를 팔아야겠다고 결심한다. “보통 막걸리라고 하면 논두렁이 떠오르잖아요. 촌스러움을 없애고 세련되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다 ‘칵테일 막걸리’를 떠올렸죠. 그리고 제가 꽃을 좋아하거든요. 꽃과 막걸리를 접목시켜 보면 어떨까 했어요.”

색과 맛을 다르게 하는 데 집중했다. 식용장미에서 향과 맛을 추출해 만든 ‘꽃 막걸리’가 그의 대표작이다. 빨간빛이 감도는 막걸리는 향긋하기까지 해 20, 30대 여성이 많이 찾는다.

이 집은 특히 전국 양조장에서 온갖 막걸리를 들여와 판다. 그 때문에 젊은 여성뿐 아니라 막걸리 애호가들도 많이 찾는다. 논산, 해남, 제주, 함평, 정읍 등 직거래 양조장만 7, 8곳에 이른다. “양조장마다 맛이 달라요. 개인적으로는 우렁이 쌀로 만든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탄산은 없고 부드럽거든요. 지역마다 다른 쌀로 빚어 저마다 특색이 있어요.”

막걸리를 계기로 ‘우리 술’에 푹 빠졌다는 이 씨에겐 다른 꿈도 생겼다. “막걸리 말고도 전통 소주, 약주, 우리나라에서 직접 재배한 캠벨 포도로 만든 와인도 꽤 맛이 괜찮아요. 와인 바 같이 고급스러운 ‘우리 술 주점’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춘천=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