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사계절의 풍경-감성 등 묘사해… 전 세계에서 사랑 받고 있어
안토니오 비발디.
계절과 날씨는 화가나 작곡가 같은 예술가에게 특별히 많은 영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계절과 관련된 예술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을 꼽으라면 누구라도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를 들 것입니다.
비발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성마르코 성당에 소속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15세에 음악학교가 아닌 신학교에 입학해 25세에 가톨릭 사제품을 받아 신부(神父)가 되었답니다.
밝은 금빛 머리색을 지녔던 비발디는 당시 ‘빨간 머리 사제’라고 불리며 유럽 전체에서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비발디 ‘사계’ 연주를 통해 유명해진 ‘이무지치’ 합주단의 앨범 재킷.
○ ‘사계’는 독립된 곡이 아니다?
사실 사계는 따로 작곡된 작품이 아닙니다. 비발디가 가장 많이 작곡한 음악 장르는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는데, ‘조화의 영감 Op.3’이라는 제목의 바이올린 협주곡집에 이어 두 번째로 발표한 ‘화성과 창의의 시도 Op.8’의 총 12개 곡 중 앞 4개 작품 즉, 1번부터 4번까지의 곡을 묶어 1번 봄, 2번 여름, 3번 가을, 4번 겨울(각각 3악장씩 구성되어 전체 악장은 모두 12개 악장)을 ‘사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화성과 창의의 시도’ 중 5번은 ‘바다의 폭풍’, 10번은 ‘사냥’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이 곡들이 곡의 특정 부분에서만 묘사적인 기법을 쓰며 제목을 암시한다면, ‘사계’는 각 곡의 악장마다 계절을 묘사하는 소네트(Sonnet)라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한 정형시로 설명을 합니다.
이 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분위기를 표현하며 각각의 악장에서 일관된 분위기로 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각 악장에 붙어 있는 소네트는 작가가 따로 적혀 있지 않고 그다지 뛰어난 시라고 할 수도 없지만, 사계절의 정경과 그에 따른 사람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음악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림1〉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된 ‘봄’ 1악장. 악보 출처 HSCC MUSIC, Piano Sheet Music
참고로 ‘사계’ 중 봄을 설명한 소네트를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봄’
1악장
봄이 왔다. 새들은 즐겁게 노래하고 시냇물은 산들바람에 실려 흘러간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천둥과 번개가 봄을 알린다.
폭풍우가 지나고 나면 새들이 다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여기 꽃들이 만발한 아름다운 초원에 나뭇잎들이 속삭이고,
양치기는 충실한 개 옆에서 깊은 잠에 빠져든다.
3악장
요정과 양치기들은 전원풍의 무곡에 맞춰 춤을 춘다.
이 눈부신 봄날에.
〈그림2〉 ‘여름’의 하이라이트 3악장.
3번 ‘가을’은 농부들의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표현하는 듯 다시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로 진행됩니다. ‘가을’을 설명하는 시에 나온 대로 ‘마을 사람들의 춤과 노래’를 전체 악기의 꽉 찬 음향과 흥겨운 8분 음표 리듬으로 여러 번 반복하며 축제 분위기를 나타냅니다.
4번 ‘겨울’은 다시 단조로 바뀌어 겨울의 극심한 추위와 살을 에는 듯 차가운 바람을 바이올린의 날카로운 음향과 불협화음으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2악장에서는 따뜻한 방에서 불을 쬐는 듯 아름답고 편안한 선율이 이어집니다. 이 악장은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 날’이라는 1990년대 우리 가요에도 샘플링(sampling·저작권을 갖춘 음악의 일부분을 녹음하거나 편집하여 재사용하는 것)되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습니다.
2악장의 아름다운 선율에 이어 3악장 마지막에는 2번 ‘여름’에 나왔던 주제 선율이 변형되어 사용되면서, 마치 겨울이 지나면 다시 따뜻한 봄이 온다는 자연의 순리를 표현하고 있는 듯합니다.
비발디 이후에도 사계절과 계절의 변화를 주제로 작곡한 곡들은 많지만, 사계절의 정경과 풍경, 사람들의 모습과 감성을 이처럼 다채롭게 묘사한 곡은 없기에 전 세계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비발디의 ‘사계’를 찾고 있는 것이랍니다.
자, 우리도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계절의 변화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김선향 선화예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