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동아일보DB
이형삼 전문기자
20억 원대 자산에다 월수입 700만 원대인 그가 “아내와 가끔 단골 삼겹살집을 찾지만 쇠고기 외식은 부담스럽다”며 ‘무늬만 중산층’을 자처해 놀랐다. “원룸 건물은 남의 돈으로 샀고 직장 계약 연장 여부도 불투명해 여유가 없다”고 했다. 건물은 아파트 전세보증금 5억 원과 대출금 5억 원으로 샀다. 자신도 입주해 원룸 2개를 틔워 쓴다. 매달 생활비 300만 원, 양가 부모 생활비 보조 100만 원, 6개월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모친의 재활병원 입원치료비와 간병비로 300만 원이 나간다. 80대인 부친과 장모도 건강이 안 좋아 추가 지출이 예상되며 자녀 등록금 등 비고정적 지출도 만만찮다.
B 씨의 불안감을 더 키운 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과세 정책이다. 원룸 건물을 임대사업으로 등록했지만 본인이 이곳에 거주하므로 8·2부동산대책에 따라 일시적 1가구 2주택 유예기간(3년) 안에 아파트를 팔아야 한다. 2년 전 건물을 매입했기에 내년까지 아파트를 안 팔면 양도차익의 50%를 양도세로 내야 한다. 호가가 많이 내렸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걱정이다.
그는 20여 년간 우리사주 배정에 꾸준히 참여했다.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믿었고 책임감도 있었다. 매입 자격이 되면 대출을 받아서도 샀고 매도 자격이 돼도 팔지 않았다. 은퇴 후 배당금과 매도 자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최근 ‘부자 증세’의 일환으로 대주주 기준을 확대하는 세법개정안이 나와 혼란스럽다. 지금은 특정 기업 주식을 25억 원 이상 보유하면 대주주에 해당되지만 2021년엔 3억 원 이상이면 대주주로 고율의 양도세를 물린다. 그는 “주식을 오래 보유하고 싶어도 대주주 요건을 피하려면 연말에 대량 매도하고 연초에 다시 사들이는 기형적 거래를 해야 한다”며 답답해했다.
그간 약 4억 원을 들여 매입한 주식이 9억 원으로 불어났지만, 이것도 20년 전 화폐 가치나 주가지수를 고려하면 대단한 수익이 아니라고 주장한다(1997년 말 삼성전자 주가는 3만8400원, 현재는 230만 원대다. 주가지수는 각각 376, 2,300대다). 20년 이상 보유자도 획일적으로 대주주로 간주해 중과세하는 것은 장기 투자, 주주 친화, 배당 장려를 유도해온 역대 정부의 정책과도 배치된다고 했다. 그는 이런 분위기라면 금융소득 분리과세 기준을 연 20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인하해 은퇴자들의 생계를 압박할 정책도 곧 가시화하리라 본다. B 씨의 ‘최후변론’을 들어보자.
“시골 출신으로 부모의 경제적 도움 없이 열심히 살아온 결과 노후를 지켜줄 어느 정도의 자본자산을 갖게 됐다. 손가락질 받지 않고 30년 노동의 대가로 취득한 자부심 있는 자산이다. 그에 합당한 세금을 내는 건 당연하지만 투기나 불로소득 부류의 자본자산과는 엄격히 구별되기 바란다. 그러나 새 정부 정책을 보면 자본에서 발생한 소득은 모두 부도덕한 것이라 징벌적 세금으로 회수해야 된다고 여기는 듯하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적 자본을 죄악시하면 누가 투자를 하겠나. 정책 입안자들이 평생 편협한 운동권 정서에 젖은 탓에, 혹은 유산이나 투기로 한방에 부(富)를 쌓은 탓에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안 해본 것 같다. 투기 세력에 대한 정교한 핀셋 과세 능력이 없다면 선량한 장기 보유자만이라도 보호해야 한다.”
분명 ‘가진 자’ 축에 드는 B 씨의 주장을 전적으로 옹호하고 싶진 않다. 다만 B 씨처럼 악의 없는 자산가들이 노후를 낙관하고 지갑을 열어 돈이 돌게 해야 이 정부의 슬로건인 ‘소득주도 성장’도 동력을 키울 것 같다.
이형삼 전문기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