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쇼보트
B급 뮤지컬을 표방하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스토리도,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도, 하다못해 분장도 다 B급을 지향한다. 유치함이 추하지 않고, 과장이 오히려 권장된다.
이블데드는 “우하하! 뭐 저래”하며 보는 작품이다. 이 흥미로운 작품이 9년 만에 돌아왔다는 것이 서운할 정도다. 친구라면 뒤통수를 한 대 쳤을 것이다.
왜 뮤지컬이 B급인가 하면, 원작인 영화가 B급 저예산 공포영화이기 때문이다. 공포를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원작의 매력이 뮤지컬에도 고스란히 이식됐다.
이블데드를 온 몸으로 즐기고 싶다면 앞쪽 스플레터석을 권하고 싶다. 극의 중간쯤 되면 좀비들이 어슬렁거리며 객석으로 내려와 시뻘건 피를 뿌리고 다닌다. 입구에서 직원이 우비를 나누어주지만 골수팬들은 옷에 고스란히 피를 맞는 걸 즐기기도 한다. 피범벅이 된 셔츠는 꽤 괜찮은 기념품이 될 것 같다.
이런 작품은 배우들의 개인기가 중요하다. 초연에서는 류정한, 조정석, 정상훈, 양준모 등 스타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조정석과 정상훈은 팬미팅 등의 자리에서 이블데드의 넘버인 ‘조낸 황당해’를 즐겨 부른다고 한다.
스캇 역의 우찬이 좋았다. 능글능글한 데다 꽤 밝히는 남자인 스캇을 흥미롭게 연기했다. 알타보이즈, 난쟁이들, 젊음의 행진 등에 출연했던 배우인데 작 품마다 눈을 끄는 배우다. 이번 시즌에는 조권과 스캇을 나눠 맡았다.
린다 역의 정가희는 청순하고 완벽한 신붓감에서 좀비로의 극단적인 점프연기를 절묘하게 표현했다.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을 핥다가 입천장이 델 듯 뜨거운 라면국물을 대접째 들고 마시는 기분이다. 지금까지 좀처럼 보여주지 않았던 정가희란 배우의 변신을 볼 수 있다.
9월17일까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하니 “슬슬 이제 한번 보러갈까”하는 분들은 조금 서두르시길.
자꾸만 B를 달라는데 A를 주고 싶어졌다. 이런 경우는 제법 난감하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