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용 예섬입시연구소장
몇 년 전부터 교육현장에서 학생부전형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중요한 평가방식으로 도입되었다. 그리고 수능의 절대평가제와 맞물려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학생부 중심전형을 지지하는 이유는 학교생활에서 다양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서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고 학교교육 중심의 공교육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공교육 중심의 교육은 자연스럽게 사교육 수요를 줄일 수 있어서 교육 기회의 공정성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을 기대한다. 반면 학생부중심전형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장점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평가방식의 공정성과 재도전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한다. 특히 공정성과 관련해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양측의 주장은 모두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논쟁이다. 학생부전형에 대한 반대 논리의 상당수는 운영과 시행 과정상 나타날 수 있는 문제로 본질적인 지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학생부전형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을 가축처럼 사육하는 것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정성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수능시험이 단기적으로는 중요한 선발방식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최선책은 될 수 없다는 것 역시 명백하다. 수능방식은 선발의 공정성은 일정 정도 확보할 수 있어도 교육의 공정성은 확보할 수 없다. 예컨대, 사교육의 접근 가능성에 따라서 학력격차가 발생한다는 것은 교육 공정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만약 교육에서 공정성이 핵심적 요소라면 상대적인 점수가 높든 낮든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공부할 기회를 주는 것이 진정한 공정성일 것이다. 실제로 네덜란드에서는 추첨제를 통해서 대학 신입생을 선발한다. 이처럼 수능은 공정성에도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객관식 시험으로 교육의 미래를 담보한다는 것은 퇴행적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학생부종합전형과 수능의 비교우위를 따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교육의 진정한 목적이 되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필자가 볼 때는 공교육의 정상화, 교육기회의 공정성이 교육의 일차적인 목적일 수 없다.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교육이 자유로운 상상력과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의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학생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의 날개는 교육을 받을수록 잘려나가고 배움의 즐거움은 점수의 공포가 대치하고 있다. 교육이 점점 배움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역설! 한국 교육에 대한 성찰과 출발점은 바로 이 지점이 될 것이다.
이 같은 교육 목적을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한국사회는 가지고 있는가? 필자는 우리 사회가 아직 ‘학생들을 위한 교육정책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 논의되고 있는 수능 절대평가제를 포함한 교육개선방안도 이런 교육 목적과는 일정 정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현재의 진행되고 있는 교육개혁안은 시간을 두고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발표 일정에 쫓겨서 사회적 합의도 없이 학생들의 삶을 담보로 어설픈 교육실험을 진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행 제도는 분명 부족하고 수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이미 적응해있다는 점에서 최악의 제도는 아니다.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를 새롭게 시작했으면 한다.
베르그송(Henri Bergson)도 지적했듯이 무한한 가능성을 잉태한 미래에 대한 희망은 미래 그 자체보다 풍요롭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