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장 전통시장 진출기]<5> 서울 뚝도시장 수제 맥줏집 ‘성수제맥주-슈가맨’ 김성현 대표
서울 뚝도시장에서 수제 맥줏집을 운영하는 청년상인 김성현 대표가 가게에서 파는 맥주와 함께 순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순대와 테이블에 놓인 떡볶이 모두 시장 내 이웃 가게에서 가져온 것이다. 김 대표는 수제 맥주와 시장 먹거리를 함께 즐기는 상생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전통시장 속 수제 맥줏집’을 여러 곳 내는 게 그의 목표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울 성동구 뚝도시장 골목에 자리 잡은 수제 맥줏집 ‘성수제맥주―슈가맨’. 이곳의 김성현 대표(35)는 1년 전 점포 개장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김 대표는 서울 인사동 수제 맥줏집에서 3년간 매니저로 일했다. 덕분에 맥주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전문가다. 하지만 문제는 맥주와 함께 먹을 안주였다. 전문 요리사를 고용할 형편은 안 됐다.
“지인들과 함께 메뉴를 고민하다가 출출해져서 시장에 있는 순대를 사다 먹었는데 맛있는 거예요. 이거다 싶었죠.”
김 대표가 지난해 8월 문을 연 성수제맥주―슈가맨에서는 순대 떡볶이 홍어 육회 등 전통시장 먹거리를 먹을 수 있다.
전통시장과 수제 맥주, 언뜻 보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장사를 하는 뚝도시장은 한때는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과 함께 서울의 3대 시장으로 불릴 만큼 번영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도 경리단길 가로수길 같은 인기 상권에 수제 맥줏집을 열고 싶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나 김 대표의 현실 인식은 꽤 냉정하다.
“주요 도심 상권이라면 저 같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었겠죠. 전통시장 중에서도 빈 점포가 없을 정도로 붐비는 곳 역시 제가 장사할 기회를 얻기 힘들었을 거고요.”
과거에 비해 상권이 위축된 전통시장이 어쨌든 그에게는 자기 사업을 펼칠 기회의 무대였다. 그는 “힘든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상생 메뉴는 모두 시장 내 가게들에서 가져온다. 수제맥주와 시장 먹거리를 즐긴다는 이색적인 재미 때문에 상생 메뉴의 매출 비중이 자체 메뉴보다 크다. 상생 메뉴는 다른 시장 상인들의 매출도 올려주는 셈이어서 기존 상인들과의 유대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그가 사업의 미래를 밝게 보는 건 기본적으로 수제 맥주를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제 맥주를 즐겨 먹는 이들에게 ‘성수제맥주―슈가맨’은 가성비 좋은 선택지다. 생맥주 형태의 수제 맥주뿐만 아니라 소규모 양조장에서 제조한 각국의 병맥주도 맛볼 수 있다. 다른 식당에서 4만 원에 팔리는 한 병맥주는 이곳에서 절반 가격이면 마신다.
물론 아직 수제 맥주가 생소한 이들도 많다. 김 대표의 가게에 와서 카스나 하이트가 없는 걸 보고 나가겠다고 하는 손님들도 꽤 있었다. 그들 역시 놓칠 수 없는 고객이다. 수제 맥주가 낯선 손님들에게 김 대표는 ‘무겁고 진한 맛의 술을 좋아하는지, 혀끝에 씁쓸한 맛이 감기는 맥주를 맛보고 싶지 않은지’ 등을 묻는다. 테이블을 돌며 손님 취향에 맞는 맥주를 권하는 것은 그가 중요시하는 영업 전략이다. 덕분에 이곳을 찾는 손님 중 상당수는 단골들이다.
김 대표처럼 손님과의 접점을 늘리는 젊은 상인들이 많아질수록 전통시장은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 김 대표와 함께 청년상인 1기인 민은영 호호건강마을 대표(35)는 “파는 사람이 젊어져야 오는 사람도 젊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년상인들은 시장의 변화를 선도하고자 한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우선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이들은 야시장 개최 같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이벤트를 여는 데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때마침 뚝도시장이 있는 곳은 공장과 카페가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로 젊은이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성수동 카페거리와 인접했다.
● “창업 초기 반짝지원보다 판로-마케팅 사후관리를”
김희정 산업상담경영원 대표 조언
뚝도시장에서 진행 중인 ‘청년상인 창업지원사업’처럼 전통시장을 기반으로 청년창업을 지원하는 제도는 규모가 꽤 크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뚝도시장과 같이 청년창업 지원이 이뤄지는 시장은 현재 20곳이다. 이와는 별도로 청년상인 점포가 20곳이 넘어가는 곳은 아예 ‘청년몰’이란 이름으로 조성하도록 한다. 현재 전국 17개 시장에서 청년몰 사업이 진행 중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업이 있었고 지자체가 별도로 운영하는 청년지원 사업도 적잖다. 기업 후원으로 이뤄지는 비슷한 프로젝트들도 있다.
이런 사업이 개시되면 초반에는 주목을 받는다. 청년들이 독특한 아이디어를 발휘한 점포들이 전통시장과 윈윈할 거란 기대들도 넘쳐난다. 하지만 그들의 사업이 3년 뒤, 5년 뒤에 어떻게 됐는지에 대한 소식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전통시장 관계자는 “과거에 반짝 주목을 받았던 청년점포 중에는 시간이 지나 결국 사업을 포기한 이들도 꽤 있다”고 전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상당수 청년상인들이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전통시장에서 대를 이어 건어물 장사를 하고 있는 윤모 씨(34)는 “솔직히 청년이라고 모두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주위에서 본 청년창업자 중 상당수는 ‘금전적 지원을 받아 창업해보고 잘 안 되면 말지’라는 식의 안이한 생각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한 전통시장 관계자는 “안이한 생각을 가진 청년들을 보면 나이 제한(만 39세 이하)을 둬서 지원하기보다는 차라리 좀 더 절박한 40대를 지원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전했다.
이미 자영업은 포화 상태다. 그만큼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청년상인들이 몇 번이고 되새겨야 한다. 김 대표는 “일단 특화된 경쟁력을 갖춘 점포라야 주인이 청년이라고 했을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통시장 기반의 청년창업을 지원하는 기관들도 창업 초기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판로 개척과 마케팅 컨설팅 등 사후 관리에 좀 더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