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車 통상임금 1심]경제단체들 일제히 판결 비판
경제단체도 일제히 이번 판결을 비판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중국의 사드 보복, 멕시코 등 후발 경쟁국의 추격,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논란 등으로 자동차 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들이 예측하지 못한 추가 비용까지 부담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노사 간 약속을 뒤집은 노조의 주장은 받아주고 합의를 신뢰하고 준수한 기업에는 일방적인 부담과 손해를 감수하라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와 재계에서 비교적 중립적 입장을 취해온 대한상공회의소의 박재근 기업환경조사본부장은 “통상임금 소송은 노사 당사자가 합의해온 관행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으로 노사 간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말했다.
부품업계는 이번 판결로 기아차가 납품 단가를 내려달라고 요구할 것도 우려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의 전문가는 “기아차는 어려워지면 채권이라도 발생할 수 있지만 이미 영업이익률이 3% 아래로 떨어진 부품사들은 은행 대출조차 받지 못해 줄도산의 위기에 있다”고 경고했다.
당장 기아차 생산직 근로자들의 임금이 오르면 사실상 같은 일을 하는 현대차 생산직 근로자들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기아차 노조의 대리인인 법률사무소 새날 등에 따르면 2017년 기아차 정규 생산직(평균근속 21년 차)의 평균 연봉은 약 6753만 원이다. 이번 판결을 적용해 연장근무 수당 등이 오르면 연봉은 약 7219만 원에 이른다. 시간당 수당만 놓고 보면 약 2만1200원으로 기존보다 72% 정도 오르는 셈이다. 올해로 6년째 파업을 이어가는 현대차 노조는 기아차와 비슷하게 임금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파업 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이번 소송으로 기아차의 사무직들도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기아차의 과장급 이상 직원들은 이미 올해 임금 동결을 선언했다. 기아차의 한 직원은 “사무직은 야근이나 특근 수당 등이 거의 없어 이번 판결로 임금이 올라가는 효과는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반면 이번 판결로 기아차와 중소 협력업체들의 임금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1차 협력업체들의 임금은 현대·기아차의 56% 수준이다. 2, 3차 업체들은 현대·기아차의 35% 안팎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기아차의 임금이 더 오르면 격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측은 “거액의 소급분을 지급받는 기아차 조합원들에 대한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자동차 업계의 위기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판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제조업 인건비 비중이나 경영 환경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해외 기업의 유치나 한국 기업의 유턴 정책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정세진 mint4a@donga.com·서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