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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사법의 정치화’ 방치하면 법원 독립 흔들 것

입력 | 2017-09-02 00:00:00


오현석 인천지법 판사가 지난달 30일 법원 내부 게시판에서 “재판이 곧 정치라고 말해도 좋은 측면이 있다”면서 “남의 해석일 뿐인 대법원의 해석, 통념, 여론 등을 추종하거나 복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판사는 진보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조사위원회 위원인 오 판사는 재조사를 요구하며 10여 일간 단식까지 한 바 있다.

오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는 헌법 조항을 근거로 극단적인 주장을 폈다. 그러나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와 법관이 재판을 할 때 근거로 삼는 양심은 같을 수 없다. 그 양심은 법관으로서의 객관적·논리적 양심, 즉 ‘법관의 양심’을 뜻한다. 어떤 법관을 만나느냐에 따라 유무죄가 갈리고 재판 진행을 ‘원님 재판’처럼 한다면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오 판사가 대법원 판례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듯한 의견을 편 것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물론 영미법계 국가와 달리 대륙법계인 우리나라는 판례에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대륙법계 국가에서도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판례는 법률 전문가들이 최대한 존중한다. 법관 경력 10년 차인 오 판사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도 참으로 경솔한 발언을 했다.

법원조직법과 법관윤리강령은 법관의 정치 관여 행위를 금지하고 정치적 중립을 엄수할 것을 못 박고 있다. 오 판사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사법부 내에 그렇게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 오 판사의 일탈이 한 개인에 그치지 않고 법원 내 특정 이념세력의 세력화로 확대되지 않도록 사법부는 스스로 자제하고 법관들에게도 자숙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정치가 조정하고 해결하지 못한 수많은 갈등이 사법부로 넘어간다.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논리와 연결짓게 되는 재판이 많아져 사법부에서마저 이념·세대 간 갈등과 충돌이 벌어질 조짐이다. 그러나 ‘사법의 정치화’는 ‘정치의 사법화’보다 훨씬 위험하다. 사법은 우리 사회 갈등과 분쟁 해결의 최종 절차이기 때문이다. 사법이 정치화하면 거꾸로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의 개입이나 불복 운동을 부메랑처럼 부를 수 있다. 그럴 경우 사법부의 독립도 밑동부터 흔들리고 삼권분립을 근간으로 하는 헌법체계도 위험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