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석 인천지법 판사가 지난달 30일 법원 내부 게시판에서 “재판이 곧 정치라고 말해도 좋은 측면이 있다”면서 “남의 해석일 뿐인 대법원의 해석, 통념, 여론 등을 추종하거나 복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판사는 진보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조사위원회 위원인 오 판사는 재조사를 요구하며 10여 일간 단식까지 한 바 있다.
오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는 헌법 조항을 근거로 극단적인 주장을 폈다. 그러나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와 법관이 재판을 할 때 근거로 삼는 양심은 같을 수 없다. 그 양심은 법관으로서의 객관적·논리적 양심, 즉 ‘법관의 양심’을 뜻한다. 어떤 법관을 만나느냐에 따라 유무죄가 갈리고 재판 진행을 ‘원님 재판’처럼 한다면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오 판사가 대법원 판례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듯한 의견을 편 것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물론 영미법계 국가와 달리 대륙법계인 우리나라는 판례에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대륙법계 국가에서도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판례는 법률 전문가들이 최대한 존중한다. 법관 경력 10년 차인 오 판사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도 참으로 경솔한 발언을 했다.
우리 사회는 정치가 조정하고 해결하지 못한 수많은 갈등이 사법부로 넘어간다.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논리와 연결짓게 되는 재판이 많아져 사법부에서마저 이념·세대 간 갈등과 충돌이 벌어질 조짐이다. 그러나 ‘사법의 정치화’는 ‘정치의 사법화’보다 훨씬 위험하다. 사법은 우리 사회 갈등과 분쟁 해결의 최종 절차이기 때문이다. 사법이 정치화하면 거꾸로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의 개입이나 불복 운동을 부메랑처럼 부를 수 있다. 그럴 경우 사법부의 독립도 밑동부터 흔들리고 삼권분립을 근간으로 하는 헌법체계도 위험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