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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홍콩의 금수저, 데이비드 탕

입력 | 2017-09-02 03:00:00


그는 영국 왕실과 각별한 친분을 맺었다. 생전에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친구였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는 카드놀이의 ‘속임수’를 전수해준 사이였다. 완벽한 매너와 패션감각, 예술적 안목을 갖춘 문화계의 마당발이기도 했다. 런던 심포니 교향악단의 핵심 후원자이고 내로라하는 미술 애호가였다. 배우 러셀 크로, 모델 나오미 캠벨 같은 스타들과도 허물없이 지냈다.

▷런던은 물론이고 뉴욕 파리 등에서 이렇듯 종횡무진 활약한 그가 바로 홍콩 출신 사업가 데이비드 탕이다. 1954년 홍콩 명문가에서 태어난 탕은 13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한 전형적 금수저였다.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998년 중국 전통의상에 서구 감수성을 융합한 패션브랜드 ‘상하이 탕’을 설립했다. 2007년 리안 감독의 영화 ‘색, 계’에서 요염한 여주인공 탕웨이가 입었던 치파오가 ‘상하이 탕’이다.

▷레스토랑과 고급 사교클럽, 쿠바 시가 판매회사 등을 운영하며 부를 축적한 탕은 파티광에 플레이보이로 이름을 날렸지만 동시에 자선활동에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 2008년 영국 여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은 이유다.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 ‘홍콩의 매력은 자유’라며 홍콩 민주화를 위한 우산혁명에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콧대 높은 서구인들도 인정한 고품격 취향과 안목, 글로벌 인맥을 활용해 중국과 중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초특급 민간대사 역할을 톡톡히 한 것도 유명하다. 동양인이면서 영국의 매력에 깊숙이 빠져든 탕은 자신이 ‘무늬만 중국인’이라며 스스로를 ‘바나나’에 빗대는 유머도 잊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간암으로 그가 별세했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영국과 홍콩을 중심으로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6일 마지막이 될 파티를 준비했지만 결국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 홍콩의 레전드급 금수저의 일생을 보면서 금수저에도 격이 있음을 알게 된다. 혜택 받은 삶을 당당하게 누리면서 부의 사회 환원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탕. 한국 사회에도 우리가 부끄럽지 않을 만한 금수저가 많으면 좋겠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