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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흔들려” 충남서도 119신고… 시민들 “당장 큰일 나겠나”

입력 | 2017-09-04 03:00:00

[김정은 核 폭주 6차 핵실험]‘휴일 핵실험’ 깜짝 놀란 국민




뉴스에 쏠린 눈 3일 서울역 맞이방에 설치된 TV에서 북한의 6차 핵실험 소식이 나오자 시민들이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집이 흔들렸어요. 너무 무섭네요.”

3일 낮 12시 36분. 이용자가 약 460만 명인 국내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에 “방금 지진이 난 것 같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처음에는 “너무 민감한 것 아니냐”며 믿지 않는 댓글이 달렸다. 하지만 곧이어 “나도 진동을 느꼈다”는 내용의 댓글이 잇달아 올라오기 시작했다.

북한이 역대 가장 큰 위력의 핵실험을 감행한 직후 소방서에는 ‘지진 신고’가 이어졌다. 소방청에 따르면 이날 “땅이 흔들렸다”는 내용의 119신고가 30여 건 접수됐다. 신고는 서울 등 수도권뿐 아니라 북한과 상당히 떨어진 충남 등지에서도 들어왔다. 소방청 관계자는 “낮 12시 반쯤 ‘흔들림이 느껴졌다’는 신고가 전국 각지에서 집중적으로 접수됐다”고 설명했다. 과거 여러 차례 북한의 핵실험이 있었지만 이로 인한 진동을 직접 느꼈다는 주민들의 신고가 쏟아진 건 이례적이다.

○ ‘연이은 도발’에 부쩍 커진 불안감

이날 핵실험에 이어 중대 발표까지 하는 북한의 모습을 보며 곳곳에서 걱정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과거 핵실험 때와 달리 도발의 간격이 좁혀지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 이날 오후 3시경 서울역 1층 맞이방 앞에는 시민 100여 명이 대형 TV 앞에 모여 관련 뉴스를 주시했다. TV에서 ‘30분 뒤 북한이 중대 발표를 하기로 했다’는 자막이 흘러나오자 한 노인이 다른 손님들에게 “조용히 좀 해보라. 뉴스가 안 들린다”고 외치기도 했다.

‘지난해 5차 핵실험의 9배 위력’이라는 자막이 나오자 일부 시민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대전행 열차를 기다리던 김철현 씨(62)는 “올여름 들어 북핵 관련 소식이 너무 자주 들리는 것 같다”며 “강경책이든 유화책이든 정부가 확실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모 씨(74)는 “예전에는 전시 대비 훈련을 자주 했는데 요즘은 민방공 훈련에도 사람들이 별 관심들을 갖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과 인접한 강원, 서해 5도 지역 주민들은 일단 차분해 보였다. 하지만 북한의 반복되는 도발을 막기 위해 강도 높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백령도 주민 김경찬 씨(51)는 “김정은이 집권한 뒤 되풀이되는 북한의 도발에 이제는 짜증이 날 정도”라며 “정부가 북한의 반복되는 도발을 막기 위해 강력한 대응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안보 위기가 조업 제한이나 지역 경기 침체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도 보였다. 동해안 최북단인 강원 고성군 명파리 이장인 장석권 씨(62)는 “새 정부 출범 이후 고성 주민들의 염원인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희망이 커졌는데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로 사실상 물거품이 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탈북자단체들은 “수소탄 실험은 예상한 수순”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관계자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완성을 선언하고 대외 개방 등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서두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이날 남북 접경지역 경찰서 13곳의 비상근무 체계를 ‘경계 강화’에서 한 단계 높은 ‘병호’로 격상시켰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전국 경찰서에 경찰특공대 등 작전부대 출동대기 태세를 확립하라고 지시했다.

○ ‘설마…’ 무덤덤한 반응도 여전

핵실험이 휴일 한낮에 실시된 탓인지 나들이 나온 시민들은 대체로 무덤덤한 모습이었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지구촌 나눔 한마당 2017’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돗자리를 펴고 사진을 찍으며 행사를 즐겼다. 한 시민은 “스마트폰으로 북한 핵실험 뉴스를 확인했지만 당장 큰일이 벌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들과 구경을 나온 김모 씨(42·여)는 “이런 일이 생길 때면 평소보다 한 줄 ‘뉴스 속보’를 챙겨 보긴 하지만 나들이를 취소할 만큼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주변에 ‘피란 키트’ 같은 걸 장만하겠다는 엄마들이 있긴 한데 그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 청계광장에서 두 아들과 나들이를 즐기던 홍모 씨(39·여·서울 성동구)는 “그동안 비슷한 소식을 자주 접해서인지 전쟁으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까지 당일치기로 놀러왔다는 이모 양(18)은 “서울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다 핵실험 기사를 봤다”며 “초등학생 때부터 툭하면 핵실험 소식을 들어서인지 별로 무섭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에 오래 살았던 외국인들도 일단 차분한 반응이었다. 국내 거주 16년 차인 이란인 모세 씨(37)는 “김정은은 외교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정말 미사일을 쏠 것 같아 가끔 걱정이 된다”며 “하지만 당장 한국을 떠나야 할 것 같다는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온 바실리 씨(43)는 “걱정스럽긴 하지만 한국 정부가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현명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부 외국인은 “북한이 괜한 불안감을 조성한다”며 반감을 드러냈다. 콜롬비아 출신 에드윈 씨(38)는 ‘김정은’을 또박또박 발음하며 “한국은 김정은만 아니면 정말 평화로운 나라인데 자꾸 불안함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김동혁 hack@donga.com·김예윤·신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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