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문화부장
요즘 지상파 방송에서 최대 화제의 다시 보기 서비스는 KBS와 MBC, 공영방송 사장을 둘러싼 갈등이다. 2008년에도 당시 정연주 KBS 사장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입장에 따라 이들 사안을 보는 관점이 다르고 세부적 내용도 차이가 있지만 큰 줄기는 다를 게 없다. 한마디로 이전 정권에 의해 임명된 방송사 사장의 거취 문제가 관건이다.
두 방송사 소속 기자와 PD 등이 제작을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새노조)는 공영방송 정상화와 경영진 사퇴를 주장하며 4일 동시 파업에 들어갔다. 여기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현재의 사장과 이사진의 구조가 공영방송의 걸림돌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KBS와 MBC 사측은 경영진 퇴진을 목적으로 하는 이번 파업을 정치적, 불법 파업으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자유한국당은 정권에 의한 공영방송 장악 시도라며 국회 보이콧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런 급박함의 이면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방송법 개정안과 관련한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만약 이 법이 통과된다면 어느 쪽으로도 비토(거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사장으로) 선임되지 않겠느냐”며 “소신 없는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우리 자체 안을 방통위에서 만드는 것을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소신 없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의 법안은 2016년 야 3당 의원 162명이 숱한 논의 끝에 내놓은 법안이다. 그 핵심은 공영방송 지배 구조를 개선하는 것으로 ‘여야 공영방송 이사 추천 비율을 7 대 6으로 개편’ ‘사장 선임 시 이사회 3분의 2가 동의하는 특별다수제 도입’이었다.
체포영장 발부로 탈출 소동이 벌어진 올해 방송의 날 기념식에 대통령은 물론이고 정부와 여권의 주요 인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불참했다.
언론 특히 공영방송과 권력의 관계는 ‘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어도 바람이 멎지 않는다’(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라는 표현처럼 오래된 숙제다.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제40회 방송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권력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 의미심장한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정치권력은 통제장치가 잘 발달돼 있으나, 언론은 잘돼 있지 않다. … 지난날 적절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서로 협력, 견제하는 관계로 잘 발전해야 한다. 방송사에 전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앞으로도 지키겠다.”
이후 십수 년 동안 대통령이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언급대로 정작 정치권력에 대한 통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김갑식 문화부장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