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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인의 잡학사전]핵무기, ICBM, 사드…어떤 사이?

입력 | 2017-09-04 18:25:00


북한이 자강도 무평리에서 시험 발사한 화성-14형 미사일.



북핵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ICBM’이라는 낱말이 등장합니다. 다들 잘 아시는 것처럼 ICBM은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에서 머리글자를 딴 표현입니다. 한국 언론에서는 흔히 이를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번역하죠. 그러니까 ICBM 자체에는 어디에도 핵무기라는 뜻이 들어있지 않은 겁니다. 그런데도 ‘ICBM = 핵무기’ 공식이 성립하는 이유는 뭘까요?

일단 낱말부터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 ‘대륙간’이라는 말은 ‘대륙 사이’라는 뜻이겠죠. 대륙 사이는 먼 거리를 뜻할 겁니다. ICBM은 사거리 5500㎞을 넘겨야 합니다. 미사일은 뭔지 아실 테니 이제 ‘탄도’라는 낱말이 남았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탄도(彈道)는 ‘발사된 탄알이나 미사일이 목표에 이르기까지 그리는 선’이라는 뜻이죠.

이것만으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개념이 헷갈릴 때는 반대말을 알아보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탄도 미사일 반대말로는 ‘순항 미사일’을 꼽을 수 있습니다. 순항 미사일은 영어를 그대로 읽어 ‘크루즈 미사일(Cruise Missile)’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비행기처럼 제트 엔진과 날개를 가지고 하늘로 뜨는 힘, 즉 양력(揚力)을 이용해 목표까지 날아갑니다. 비행 중에 고도나 속도를 바꾸지 않고 순항(順航)한다 해서 순항 미사일입니다.

미군의 대표적 순항 미사일인 ‘토마호크’ 미사일. 미 해군 홈페이지.



순항 미사일이 수평에 가까운 개념이라면 탄토 미사일은 수직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ICBM은 수직으로 발사했다가 30도로 기운 채 목표를 향해 날아갑니다. 인공위성 등을 쏘아 올리는 우주 로켓이 계속 하늘 높이 올라가는 데 반해 ICBM은 일정 고도에 도달하면 기울기 때문에 비행 궤적을 보고 발사체가 우주 로켓인지 ICBM인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위 그래픽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ICBM은 대기권 바깥으로 나갔다가 들어옵니다. 이 대기권 재돌입이 바로 ICBM 핵심 기술입니다. 북한은 이미 미사일을 멀리 보내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ICBM 개발에 성공했느냐 아니냐는 논란은 이 대기권 재돌입 기술을 확보했느냐 그렇지 않으냐를 따지는 거죠.



이렇게 높이 올라갔다가 떨어질 때 목표 지점에 정확히 도달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미사일 정확도를 측정할 때는 CEP(Circular Error Probable·원형공산오차)라는 개념을 씁니다. CEP는 미사일 50% 착탄 반경을 가지고 측정합니다. 예를 들어 CEP가 100m라면 발사한 미사일 50%는 반지름 100m 안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최신 ICBM이 보통 기준으로 삼는 게 CEP 100m입니다.

이 정도 정확도를 선보이려면 발사지점과 목표지점을 m 단위까지 정확하게 입력해야 하는 건 물론, 목표 지점 상공의 공기 밀도(온도에 따라 달라집니다)를 예상해 초속 3㎝ 이상 차이가 나지 않게 ICBM 속도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이건 ICBM이 아니더라도 어렵고 또 어려운 일입니다. 아예 ‘탄도학’이라는 학문이 따로 있을 정도.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학문을 “발사한 탄환이 날아가는 방식을 연구하는 학문. 중력, 공기 저항, 탄환의 회전, 풍력, 지구의 자전 따위를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에 방대한 수치 계산이 필요하며 초기 컴퓨터 개발의 요인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죠.

세계 최초 탄도 미사일로 평가받는 V2. 미 항공우주국(NASA) 홈페이지.




이렇게 멀리 또 정확하게 날아가는 미사일을 만들려면 돈이 아주 많이 들겠죠? 그래서 핵탄두를 쓸 정도가 아니면 일반적으로 ICBM을 만들지 않습니다. 세계에서 국방비를 제일 많이 쓰는 미국조차 2006년에야 비핵탄두 ICBM 개발을 시작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ICBM = 핵무기’가 되는 겁니다.

핵무기 자체는 세계 2차 대전 때처럼 전략폭격기에서 쏠 수도 있고, 순항미사일에 탑재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대포로 쏘는 것도 가능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면 상대방이 요격하기가 너무 쉽다는 겁니다. 이 역시 ‘핵무기 = ICBM’인 이유입니다.

핵탄두가 대기권으로 재돌입할 때 속도는 마하 25~30 정도(시속 30만600~36만720㎞)입니다. 대기권 안으로 들어온 뒤에도 마하 20 정도로 낙하합니다. 이에 비하면 ‘거북이’라고 할 수 있는 미 공군 SR71 블랙버드(최고 속도 마하 3.3)도 실전에서 한 번도 격추당한 적이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입니다. 게다가 상대방 방어용 미사일 전파를 교란하는 채프까지 뿌리기 때문에 대기권에 재돌입한 ICBM을 요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유인 항공기 SR71 ‘블랙버드’. 미 국방부 홈페이지.



그래서 그 전까지는 ICBM이 대기권에 도달하기 전에 요격하는 게 일반적인 ICBM 대응책이었습니다. 이 개념을 바꾼 게 바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죠. THAAD에서 맨 처음 T는 ‘Terminal’ 즉 맨 끝이라는 뜻입니다. 탄두가 재진입해 낙하하고 있는 최후 상황에서 요격을 맡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대부분 알고 계시겠지만 혹시 모르셨다면, 핵과 ICBM, 그리고 사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제 아시겠죠?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