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데뷔전 땐 의아해하던 관중, 삼성팬 연호 등 나설 때마다 화제 교육리그땐 日언론과 인터뷰하기도
‘국민타자’ 이승엽과 동명이인으로 2006년 두산에서 활약했던 이승엽이 자신이 감독을 맡고 있는 부산 수영구 ‘디 베이스볼 아카데미’에서 선배 이승엽의 타격 폼을 취하고 있다. 부산=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둘은 여섯 살 차. 한자(李承燁)도 똑같다. 이승엽 선배가 1995년 삼성에 입단한 뒤 야구를 시작했다.
후배는 늘 선배와 비교되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래서 같은 이름으로 태어난 것에 실망도 해봤고, 선배 때문에 부담을 받지 않았다면 야구를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에 잠 못 이룬 날도 많았다. 한때는 ‘짝퉁 이승엽’이라는 말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표현마저 반갑다.
“광주 KIA전이었는데 관중석에서 ‘이름이 거시기 왜 이승엽이야?’ ‘스타 되려고 이름을 지었는가’라는 전라도 사투리가 들려왔어요. 집중이 안 돼서 어떻게 경기를 했는지 몰라요. 하하.”
그해 12경기에 나선 그는 이름 때문에 경기마다 화제가 됐다. 그는 “잠실 삼성전 타석에 들어섰는데 3루 측 삼성 팬들이 제 이름을 크게 부르더라고요. 승엽 선배는 요미우리에 계실 때였는데…. 몸이 허공에 뜬 것 같았어요. 눈물도 나고 마치 연예인이 된 듯했는데 집에 가서야 다시 나로 돌아왔어요”라며 웃었다. 2006년 시즌을 마치고 미야자키 교육리그에 참가했을 때는 요미우리 4번 타자 이승엽 덕분에 일본 스포츠신문과 인터뷰도 했다.
선배처럼 홈런포를 날려보고 싶었지만 홈런은커녕 안타도 없었다. 1군 마지막 경기가 된 잠실 롯데전에서 중앙 펜스까지 타구를 날렸으나 수비에게 잡혔다. 그 타구가 가끔 홈런이 되어 꿈에 나올 정도다.
부산고 출신인 그는 동갑내기 정근우(한화), 추신수(텍사스)와는 고향 친구이자 고교 동문이다. 경남고 출신 이대호(롯데)와도 학교는 다르지만 친하다.
“신수는 학교 밖에서 편하게 대해주고 저의 기를 살려줬어요. 승엽 선배처럼 할 수 있다고요. 대호는 2008년 군사 훈련을 함께 받았는데 훈련소 관계자들이 ‘이승엽’ 이름과 제 얼굴을 보고 혼란스러워할 때 ‘두산의 이승엽인데 승엽 선배만큼 잘할 겁니다. 사인 받으세요’라며 치켜세워 줬어요.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그는 “프로에서 승엽 선배의 등번호 36번에 1을 더한 37번을 달겠다고 했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하지만 결국 마음처럼 되지 않았지요. 나중에는 ‘짝퉁 이승엽’이라는 말에 내 마음을 다스리지도 못했습니다”라고 했다. 오죽했으면 어머니가 이름을 바꾸자는 제안도 했었다.
2014년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어깨 부상으로 마지막 프로 복귀의 꿈을 내려놓은 그는 부산에서 횟집과 생선 가게에 얼음을 배달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야구인 이승엽’을 외면할 수 없었다. 현재는 ‘야구 아카데미’ 감독으로 사회인 야구 동호인, 리틀 야구 선수들을 개인 지도하고 있다.
부산=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