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 영향 중저가 급증
유통가, 5만원 맞춘 선물세트 꾸려
PB-가정간편식 등 가성비 앞세워
高價 이끈 백화점-호텔도 실속 주력
“고객들, 싸지만 이색적 선물 선호”
참조기보다 크지만 값은 저렴한 민어를 말린 ‘민어굴비’(5마리 4만9900원), 45년 된 연탄 불고기 맛집의 숙성 노하우로 만든 ‘돼지불백’(5만 원), 자체브랜드(PB)로 유통마진을 줄인 ‘한우 정육’(4만8800원)….
유통업계의 선물세트 지형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가장 큰 원인은 작년 9월 본격적으로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다. 김영란법 시행 직전인 작년 추석과 시행 후 첫 명절이었던 올해 설을 지나면서 5만 원 이하 명절 선물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참조기 대신 민어로 만든 이마트의 ‘민어굴비 세트’(5마리·4만9900원). 이마트 제공
추석 명절 선물 매출은 설 명절 때보다 10% 정도 높다. 유통업체들이 대목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선물세트 사전 예약 판매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김영란법 선물 상한선인 5만 원에 맞춰 단가를 낮추거나 이색 상품으로 구성한 선물세트를 앞다퉈 내놓는 추세를 보인다.
5일 이마트에 따르면 추석 선물세트 판매를 시작한 지난달 14일부터 이달 3일까지 5만 원 이하 선물세트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전체의 85.6%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추석 때 같은 기준 선물세트 판매 비중은 전체의 69.9%를 차지했다. 올해 설에는 그 비중이 72.6%까지 늘었는데 이번에 더 오른 것이다.
최훈학 이마트 마케팅팀장은 “사전예약 기간에는 기업 단위 고객들이 많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추석을 앞두고 중저가 선물세트의 쏠림 현상이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 영향으로 5만∼10만 원짜리 선물 비중이 뚜렷하게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만 10만 원 이상 선물의 비중은 1년 전과 비교해도 변동이 거의 없다.
현대백화점이 지역 맛집과 손잡고 출시한 ‘쌍다리 돼지불백 세트’(5만 원). 현대백화점 제공
고품질과 화려한 포장을 앞세워 고가(高價) 명절 선물 시장을 이끌어온 백화점과 호텔업계에서도 5만 원 이하 선물세트의 신장세가 두드러진다. 롯데백화점은 지난달 8∼30일 사전예약 판매에서 5만 원 이하 선물 매출액이 지난해 추석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 71.6% 증가했다. 현대백화점은 5만 원 이하 ‘실속 세트’ 물량을 지난해 추석 때보다 20% 늘려 잡았다. 도상우 롯데백화점 식품부문 바이어는 “가격대는 낮지만 평소 접하기 힘든 이색적인 선물세트를 찾는 고객이 많다. 올해 추석은 아이디어를 담아 창의적인 선물세트를 선보이는 전략을 세웠다”고 했다.
유통업체들은 선물세트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PB, 가정간편식(HMR) 등으로 ‘가성비’를 앞세운 구성을 선보이고 있다. 이마트는 4만 원대인 ‘499세트’ 상품을 지난 설 명절 29개에서 이번 추석에는 53개까지 늘렸다. 지난해 첫선을 보였던 ‘민어굴비’ 물량도 확대했다.
다음 달 4일인 추석은 지난해 추석(9월 15일)과 비교하면 19일 정도 늦다. 8년 만에 ‘10월 추석’을 맞게 되면서 배, 사과 등 과일들이 충분한 생육기간을 거쳐 품질이 좋은 편이다. 선물세트용으로 적합한 크고 맛 좋은 과일의 공급이 원활하다.
유통업체들로서는 사전 판매 기간이 늘어난 점도 매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배는 60%였던 720g 이상 대과 비중이 80% 이상으로 높아졌다. 시세도 10%가량 하락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지난 설 명절 때는 국내산 농축산물 선물세트 매출이 작년 설보다 25.8% 감소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농축산물 가격이 낮아져 가격경쟁력이 생긴 만큼 작년보다는 관련 선물세트 매출 신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