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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 갔지만 비난 쏟아진 신태용호… 이 헹가래 자격 있나

입력 | 2017-09-07 03:00:00

월드컵 9회 연속 진출




6일 새벽. 잠을 설쳐가며 한국-우즈베키스탄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10차전을 TV로 지켜보던 축구 팬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 0-0으로 비긴 신태용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이 9연속 본선 진출 소감을 얘기하는 가운데 작은 화면에 ‘LIVE’라는 자막 아래 시리아-이란 경기가 방영됐기 때문이다. 후반 추가시간에 극적으로 2-2 동점을 만든 시리아가 한 골을 더 넣으면 한국 대신 본선 직행 티켓을 거머쥘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시리아-이란 경기는 2분가량 더 이어졌다. 천만다행으로 추가골은 안 나왔지만 자칫 ‘취소 인터뷰’를 할 수도 있었다.

한국 축구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지만 팬들의 반응은 칭찬보다 비난에 쏠린다. 과거에도 어렵게 본선에 나간 경우가 많았지만 그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이란 덕분에 한국이 본선에 ‘진출당했다’는 표현이 인터넷을 달궜다.

팬들 가운데는 1993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1994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았다. 당시 북한과의 최종전을 남겨놓은 한국은 일본에 승점 2점, 사우디아라비아에 승점 1점 뒤진 3위였다. 북한을 이겨도 일본이 이라크를,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을 꺾으면 본선 직행은 불가능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승전보를 전하며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한국은 북한을 3-0으로 완파했지만 일본-이라크 경기가 끝나지 않았기에 기뻐할 수 없었다. 선수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라운드를 빠져나온 뒤에야 낭보가 전해졌다. 이라크가 후반 추가시간에 동점을 만든 것이다. 한국은 일본과 2승 2무 1패로 동률이었지만 골 득실에서 앞서 티켓을 손에 쥐었다. 지금도 회자되는 ‘도하의 기적’이다. 당시 대표팀은 이기고도 자중했고, 지금 대표팀은 졸전 끝에 비겼고, 결과도 모른 채 기뻐했다는 게 팬들의 지적이다.

여기에 더해 “시리아-이란 경기가 끝나기 전에 헹가래를 쳤다”는 보도는 팬들을 더 자극했다. 이에 대해 대한축구협회는 “인터뷰는 아시아축구연맹(AFC)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고, 헹가래는 시리아-이란 경기가 끝난 것을 확인한 뒤”라고 밝혔다.

똑같이 다른 팀의 도움으로 진출하고도 반응이 대조적인 이유는 뭘까. 팬들의 달라진 눈높이를 대표팀이 따라가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1990년대와 비교할 때 지금은 이란을 제외하면 중동보다는 한 수 위가 됐고 ‘축구의 본고장’ 유럽에서 활동하는 선수도 크게 늘었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요즘 팬들은 과거처럼 결과(본선 진출)만 따지지 않는다. 많은 정보를 통해 ‘한국 축구가 불량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도 조광래, 최강희, 홍명보 감독을 거치며 망가졌는데 달라진 게 없다. 연령대별 대표팀도 부실하고 프로축구도 심판 매수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대표팀의 제조사’인 대한축구협회부터 달라져야 남은 9개월 동안 본선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유럽파 선수에 대한 정확하고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주전을 보장받고 있는 손흥민도 자신의 장점을 대표팀에서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수비는 ‘패스 마스터’ 기성용을 날게 할 수 있도록 후방으로부터의 빌드업에 능한 진용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축구협회는 다음 달 2∼10일 국제축구연맹(FIFA) A매치 기간에 유럽에서 두 차례 평가전을 계획하고 있다. 11월 6∼14일에는 대표팀을 다시 소집해 기량을 점검할 예정이다. 본선 조 추첨은 12월 1일 모스크바에서 열린다. 한편 우즈베키스탄(―1)을 골 득실에서 앞선 시리아(+1)는 A조 3위 자격으로 다음 달 B조 3위 호주와 대륙 간 플레이오프 진출을 다툰다.

이승건 why@donga.com / 타슈켄트=정윤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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