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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도서관]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함민복 ‘가을’

입력 | 2017-09-07 16:56:00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함민복 ‘가을’


가을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밖에 나가고 싶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마음. 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바람에 몸이 가벼워지니 그럴 법하다. 그리고 손잡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마른 피부에 온기가 느껴지는 시기니 그렇다. 가을은 사랑하고 싶은 계절이다.

함민복 씨의 시 ‘가을’은 단 한 줄이다. 그런데 이 한 줄만으로 가을 한 계절을 전부 가슴에 품은 것 같다. 시인은 ‘시가 절제’임을 새삼 깨우친다. 하고 싶은 말을 아끼고 아껴 한 줄로 줄였다. 생각해보면 누군들 이렇게 잠들지 않았던 적이 있을까. 가을밤에.

이 짧은 한 줄은 삶을 오로지 시에만 몰입시켰던 시인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20여 년 전 강화에 자리 잡은 그는 월세 10만 원짜리 방에서 시를 쓰고선 빨랫줄에 걸어 놨다. 생활비가 떨어지면 빨랫줄에 걸린 시를 떼어내 출판사에 보내고는 고료 몇 만 원을 받아 쌀을 샀다. 이제는 가정을 꾸려 아내와 함께 인삼가게를 하고 있지만 시인은 여전히 새벽이면 일어나 시를 쓴다. 시에 헌신하는 시간의 분량은 줄었겠지만 그 뜨거움은 그대로이리라. ‘가을’ 한 줄에 담긴, 따뜻하게 절실한 그리움처럼.

김지 영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