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동아DB
한화 이상군 감독대행은 현역시절 프로 첫 시즌이었던 1986년 243.1이닝 동안 단 43개의 볼넷만을 허용했다. 선수로 전설적인 기록을 남긴 선동열 국가대표 감독은 프로 2년차였던 같은 해 262.2이닝 동안 볼넷 52개를 내줬다.

선수 시절 선동열.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기록이다. 2017시즌 방어율 1위 두산 장원준은 7일까지 153.2이닝을 던져 볼넷 44개를 허용했다. 물론 달라진 리그환경 등 단순비교는 힘들지만 1980년대 특급 투수들의 정교한 투구를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도 느낄 수 있다.
많은 야구팬과 현장 지도자들은 “현재 투수들이 과거에 비해 스피드는 훨씬 뛰어나지만 제구력은 평균적으로 떨어진다”고 말한다. 또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스피드보다 오히려 제구력이 더 타고난 재능이 필요한 영역이다’는 이론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 감독대행은 특히 “지금은 스피드가 빠른 투수를 선호한다. 과거에는 워낙 강속구 투수가 적었기 때문에 컨트롤이 뛰어난 투수가 많은 기회를 잡았다”고 말했다. 제구력의 재능보다 스피드의 타고남이 신인 스카우트 때부터 더 환영받기 때문에 투수들의 스타일이 과거와 다르다는 의견이다.
한화 선수 시절 이상군. 스포츠동아DB
현장 지도자들은 대체로 투수의 공 스피드는 절대로 노력으로 도달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몸을 키우고 골반 회전, 밸런스 등을 잡으면 프로에서 4~5km 이상 빨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 단 제구는 향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확실한 정립이 어렵다. 근력향상이 필요한 스피드와 달리 트레이너 파트의 역할 비중도 낮다.
스피드와 제구력 두 가지 능력을 함께 갖고 있었던 선동열 감독은 “제구력은 대학 때 대표팀에 뽑히면서 굉장히 좋아졌다. 일본에서는 스트라이크를 잡기보다 존을 살짝 벗어나 범타를 유도하는 공의 중요성을 많이 배웠다”고 자주 회상했다. 선 감독의 의견은 제구도 얼마든지 노력으로 크게 발전시킬 수 있다고 해석 할 수 있지만 최고의 유연성과 완벽한 투구 폼을 갖고 있던 선 감독의 사례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미국 마이너리그에는 시속 150㎞ 이상은 물론 160㎞를 던지는 유망주가 즐비하다. 그러나 상당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마이너와 해외리그를 전전한다. 갈림길은 더블A에서 실전훈련이 시작되는 두 가지 변화구 제구력이다. 볼카운트 3B-1S에서 원하는 코스에 변화구를 던질 수 있어야 메이저리그 투수가 될 수 있다.
야구에서 수비는 하면 할수록 느는 대표적인 땀의 대가. 반대로 투수의 스피드는 신의 축복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정확한 투구도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특별한 선물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