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냄새’가 났다. 이 학부모는 신문에 실린 자녀의 이야기를 학생부종합전형 등 대입을 위한 스펙의 하나로 쓰려는 듯했다. 정작 이 학생은 엄마가 보낸 기고문을 알기는 할까? 봉사 동아리를 진짜 학생의 힘으로 일군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A4용지 한 장짜리 기고문까지 엄마가 대신 써주는, ‘우주에서 제일 바쁜’ 고단한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현실 속에서 온갖 봉사활동과 동아리활동 등 비교과 스펙을 요구하는 학종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참으로 ‘잔인한’ 제도다. 글을 받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마냥 학부모를 탓할 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홀로 정직했다고 대입에서 가산점을 받는 것도 아니고, 상대적 고배를 마시지 않기 위해 진짜든 가짜든 최대한 아름다운 스토리를 ‘창작’해내야 하는 게 요즘 수험생의 현실이다. ‘자소서’가 아니라 ‘자소설’이란 말이 괜히 나왔겠나. 제도가 온 국민에게 진정성 따윈 내동댕이치고 거짓말쟁이가 되라고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온갖 학종 스펙을 만들어놔도 안심할 수 없는 게 현재의 입시다. 석차 위주 상대평가 체제의 학교 시험 경쟁에서 0.01점이라도 밀렸다가는 아무리 잘해도 내 옆에 앉은 친구와 등수가 뒤바뀔 수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친구와의 지식 공유나 협업 같은 건 큰일 날 소리다. 올해 초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 학생들이 휠체어를 탄 친구의 ‘계단식 강의실 변경’ 요청에 ‘너 하나 때문에 왜 내 강의실이 멀어져야 하냐’며 반대한 것은 우리가 대체 어떤 인재를 키우고 있는가를 심각히 돌아보게 만든 사례다. 일생 네모진 책상 안에서 혼자만 잘해보려다 관 속에 들어가는 한국인의 삶. 그 시작은 학교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최근 “고교 내신평가와 학종, 수능까지 아우르는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겠다”며 수능 개편을 1년 미뤘다. 내년 고1에게, 배운 것과 다른 시험을 보게 하는 초유의 희생을 감내하게 하면서까지 개편을 미룬 만큼 국민의 기대는 더 높아졌다. 새 정부의 교육철학이 이상뿐인 말잔치로 끝날지, 아니면 완고한 현실의 벽을 타파할 정교하고 힘 있는 정책으로 탄생할지, 국민 모두 매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