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 씨는 소설 ‘삼풍백화점’에서 1990년대에 대한 20대 여성의 기억과 그때의 사회문화 현상을 ‘삼풍백화점’이라는 공간과 맞물려 묘사한다. 사진 동아일보DB
‘1982년 12월 개장한 삼풍백화점은 지상 5층, 지하 4층의 초현대식 건물이었다. 1995년 6월 29일, 그날, 에어컨디셔너는 작동되지 않았고 실내는 무척 더웠다.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언제 여름이 되어버린 거지. 5시 40분, 1층 로비를 걸으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5시 43분, 정문을 빠져나왔다. 5시 48분, 집에 도착했다. 5시 53분, 얼룩말 무늬 일기장을 펼쳤다. 나는 오늘, 이라고 썼을 때 쾅, 소리가 들렸다. 5시 55분이었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다. 한 층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1초에 지나지 않았다.’
-정이현 소설 ‘삼풍백화점’에서
‘삼풍백화점’(2005년)이라는 소설은 제목이 가리키는 그대로 삼풍백화점에서의 시간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삼풍백화점은 안전불감증의 대표 격이자 한국 사회의 상처였다. 2년 뒤 다가올 IMF 사태의 예언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강남 한복판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백화점이 한순간에 붕괴된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지 못한 ‘나’와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취직한 R. 삼풍백화점 근처에 살고 있는 나와 남산이 보이는 옥탑방에 살고 있는 R. 두 사람이 공통되게 갖고 있는 것은 ‘삐삐’. 1990년대 초반 젊은이들이 공유했을 소통 수단이다. 이 새롭고도 쾌활한 기기로 두 사람은 가까워지는 듯하지만 종내 그 간극은 좁혀질 수 없음을 소설은 보여준다.
이 소설은 1990년대를 20대를 경험한 이들에게 애틋한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그때는 화려함으로 한껏 부풀었다가 이내 무너진 시간이었다. 아름답고 신기한 것들이 잇달아 눈을 붙잡았지만 마음의 허기짐을 채우긴 쉽지 않았다. 눈과 마음의 간극은 2000년대 들어 조금은 좁혀졌을까. 더욱 커지는 건 아닐지.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