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금수저-깜깜이 전형 vs 흙수저-다양성 전형… 10년째 평행선
문제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학종을 ‘금(金)수저 전형’ ‘깜깜이 전형’으로 부르며 반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학종에 대한 불신과 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고 사교육 유발 요소를 대폭 개선해 학생, 학부모의 부담을 경감하고 신뢰를 회복하겠다”며 학종 개혁을 선언했다.
학종은 교과 성적과 비교과 활동을 종합한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바탕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입시 제도다. 우수 인재의 기준을 ‘시험 성적’이 아닌 ‘성장 가능성’에 맞춰 다양한 인재가 대학에 갈 수 있는 길을 열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학종은 어쩌다 ‘금수저 전형’이 됐나
고1 아들을 둔 남모 씨(48·여)는 “중학교 때 ‘수학의 정석’을 3, 4번은 돌려야 한다는 식의 ‘선행학습 공식’이 생겨난 건 고등학교 때 비교과 활동을 하려면 내신을 미리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수행평가와 동아리 활동을 병행하느라 밤을 새우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어느 학교를 다니느냐에 따라 학생부가 큰 차이를 보이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7월 종로학원하늘교육이 학교알리미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특수목적고나 자율형사립고에 다니는 학생의 학내 자율동아리 활동 비율이 전국 고교 평균보다 최대 7배 이상 높았다. 이현 우리교육연구소장은 “학교 평판을 올리기 위해 일반고에서는 수상 실적 등을 기재할 때 상위권 학생에게 ‘밀어주기 현상’이 공공연히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고교 2년 6개월 동안 치열하게 학종을 준비해도 합격과 불합격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깜깜이 전형’이라는 불만도 크다. 이종배 공정사회를위한국민모임 대표는 “정성평가가 뿌리내리기에는 한국은 ‘저신뢰 사회’”라며 “줄 세우기라는 비판이 있더라도, 1점 차이로 학생 능력을 가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더라도 공정하고 투명한 시험으로 선발하는 게 최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래도 학종이 ‘해답’이라는 반론
학종이 고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한다는 현실론도 있다. 수능만으로 대학을 간다면 학교에서 낮잠을 자고, 학원에서 밤샘 공부를 하는 학생이 늘어날 수 있다. 이중기 청원고 교사는 “수능 교과별 사교육비는 언급하지 않고 자소서 컨설팅만 이야기한다”며 “시골 아이들이 대학에 갈 기회를 주는 게 학종”이라고 했다. 오히려 계층에 따라 수능 점수의 편차가 크고, 수능으로만 진학한다면 재수 삼수 할 여유가 없는 아이들은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얘기다.
경희대 입학전형연구센터가 2017학년도 출신지역별 합격자 현황을 분석했더니 소득이 높은 지역일수록 수능으로 진학하는 비율이, 소득이 낮은 지역일수록 학종으로 진학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강남구는 93%가 수능, 7%가 학종으로 입학한 반면 경기 이천시는 92%가 학종, 8%가 수능으로 합격했다. ‘금수저 전형’이 아니라 ‘흙수저 전형’이라는 얘기다. 안연근 서울진학지도협의회장(잠실여고 교사)은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는데 가정형편이 어렵다면 교사들이 안쓰러워서라도 학생부를 정성껏 쓰게 된다”고 말했다.
이를 서울 주요 10개 대학으로 확대해도 마찬가지다. 3월 발표된 ‘학종 3년의 성과와 고교 교육의 변화’ 자료를 보면 2017학년도 대입에서 특목고·자사고는 수능, 일반고는 학종에서 우위를 보였다. 대학 진학 후 학종 출신의 성취도가 높은 점도 눈에 띈다. 2016년 기준으로 중간에 대학을 그만두는 중도탈락률이 학종은 1.7%, 수능은 3.4%였다. 평균 학점은 학종이 3.33점, 수능이 3.10점이었다.
학종 어떻게 바꿔야 하나
최근 교육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학생부 기록을 교과 성적, 교과 특기사항, 정규 동아리, 교사 의견란 등 4개 항목으로 최소화할 것을 제안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나 사교육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율 동아리나 수상 내용, 자격증 등 나머지 항목을 없애자는 주장이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학생부 기재 요소를 대폭 줄이고 자소서를 폐지하거나 대필 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며 “수시에선 수능, 정시에선 학생부전형을 도입해 수험생들에게 기회를 넓혀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좀 더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종 도입으로 교실 붕괴의 속도를 늦춘 데 만족할 게 아니라 내실 있는 공교육을 통해 학종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안 회장은 “수능 준비를 위해 EBS만 틀어주는 수업이 정상적이냐”며 “궁극적으로 토론수업을 확대해 아이들은 사고력을 키우고 교사는 아이들의 성향과 장단점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부모 이모 씨(46)는 “찍기 교육이 정답은 아니다. 각자 진로에 맞춘 비교과 활동은 장려해야 한다”며 “다만 준비가 안 된 교사들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고교 교육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경임 woohaha@donga.com·김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