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아 도쿄 특파원
이런 가운데 7일 일본 후지TV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아베 총리와의 통화에서 한국이 대북 대화에 집착한다며 “(구걸하는) 거지 같다”고 비난했다고 보도해 파문을 불렀다. 곧바로 청와대가 강한 유감을 표하고 일본 외무성도 “그런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후지TV는 심야뉴스에서도 같은 보도를 내보냈다. 보도에서는 미일 정상의 잇단 통화는 군사적 압력에 엉거주춤한 태도를 보이는 한국과 그에 짜증을 내는 미국 사이를 일본이 중재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거친 말버릇도 그렇지만, 5일 산케이신문도 트럼프가 아베 총리와의 전화 회담에서 한국의 대응을 비판했다고 한 줄 썼던 걸로 봐서 일본 정부 내에서 이 같은 정보가 흘러나온 것은 사실인 듯하다. 굳이 정보를 흘리고 이를 보도하는 데서 한국을 모욕하고 한미관계를 이간질하려는 의도가 의심되기도 하지만, 이는 미일이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고 한국은 제외되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의 단면이 드러난 것 아닌가 싶다.
참고로,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오피니언 리더 상당수는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여기에는 문재인 정권이 ‘미래지향’을 말하면서도 말끝마다 일본의 아킬레스건인 역사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에 대한 불만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가령 북한이 괌 주변 포격계획을 발표한 불과 며칠 뒤, 문 대통령은 8·15경축사에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남북 공동조사를 제안해 일본을 경악시켰다.
문재인 정권의 외교안보 정책은 미일 외교가의 문법으로 보자면 모호해 보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발등의 불이 된 지금은 상황이 급박하다.
‘핵보유국’ 북한이 한국을 제치고 미국과 1 대 1 대결에 집착하는 것을 제어할 수단을 한국은 사실상 가지고 있지 못하다. 더 큰 문제는 한반도 관련 모든 당사국과의 관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비우호적이라는 점이다. 중국은 마치 속국에 하듯 사드 보복을 하고 있고, 미일과의 관계도 삐걱거린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한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발언권 없는 객체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사드 배치 강행을 결정한 지금 문 정권은 전통적인 한미동맹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일본과의 관계도 달리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말 그대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가 필수요소가 된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