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이 한순간의 망설임이나 기다림도 없이 앞다퉈 변해간다. 그 와중에 제법 오랜 세월 같은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벼농사다. 실체와 가상의 경계가 무너진 사회에서 성장한 요즘 아이들도 ‘옛 나라 왕들이 농사를 위해 하늘에 간절히 비를 빌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럭저럭 알아듣는다.
부족한 물로 논의 마지막 모내기를 겨우 끝낸 어느 마을 이야기다. 태양보다 뜨거워진 눈으로 깡마른 하늘을 올려다보던 사람들이 결국 한 줄기 수로를 놓고 싸움을 벌인다. 비 한 방울의 의미, 밥상에 올라온 쌀알 한 톨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수저 든 아이들이 어렴풋이 알아채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