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업적에 대한 과장된 발언과 드라마틱한 몸짓 등으로 화제를 일으켰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기자회견하는 모습. CNBC 웹사이트 캡처
‘You won’t have Nixon to kick around anymore, because, gentlemen, this is my last press conference.‘(여러분들은 더 이상 닉슨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기자 여러분들, 이게 나의 마지막 기자회견이니까요)
이 짧은 문장에서 언론에 대한 적대감이 느껴지지 않으신지요. 이 말을 한 주인공은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어번 딕셔너리‘(Urban Dictionary 도시의 사전)에서 ’기억할만한 닉슨의 발언‘ 중 1위로 꼽힌 말입니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 직후 궁지에 몰렸을 때 한 말 같지만 사실 대통령이 되기 전인 19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때 한 얘기입니다. 민주당 후보에 참패한 뒤 비버리힐즈 호텔에서 패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에게 마구 화를 냈습니다. 자신이 패한 건 기자들이 자신을 미워했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1시간 기자회견 중 48분은 언론에 대한 악담을 했다고 하니 참석했던 기자들이 민망했을 듯 합니다. 회견에서 기자들에게 막말을 퍼부어 다들 ’닉슨의 정치생명은 끝났다‘고 했지만 그는 다시 부활해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리고 기자들이 파헤친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다시 몰락했죠. 정말 닉슨과 언론은 상극입니다.
’I do think that majority of folks now in the briefing room, they are not here for the facts and the pursuit of the truth.‘(내 생각에는 지금 여기 브리핑룸에 있는 친구(기자)들은 사실을 알고 싶어 한다거나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선 정치인이 기자회견이나 브리핑을 하면 송곳 같은 질문을 던지는 기자와 그런 기자들의 공격을 노련하게 제압하는 정치인의 대결 구도로 그려지며 흥미진진해 보이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러나 워싱턴 특파원 시절 국무부 브리핑에 수차례 참석해본 결과 대부분 매우 지루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백악관 브리핑도 마찬가지구요. 어찌 보면 지루한 게 정상일지 모릅니다. 미국처럼 정치와 사회가 안정된 나라에서는 기자들이 흥분할만한 대형 사건은 사실 잘 터지지 않기 때문이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전 한 인터뷰에서 재임 중 언론과의 관계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비교적 언론의 호의적인 대접을 받은 대통령인데도 말이죠. 그러면서 언론과 너무 가까이 하려고도, 너무 멀리 두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뉴욕타임스‘ 같은 언론이 자신의 정책이나 정치 스타일에 대한 비판 기사를 쓰면 화가 나서 잠도 안 오고 나중에 ’지옥에나 가라‘는 연하장을 써서 기자에게 보낼까 하는 생각도 했다는 농담을 했죠.
언론과 권력의 관계가 얼마나 균형을 맞추기 어려운지는 누구보다 우리나라가 잘 압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언론과의 관계도 수시로 바뀌는 굴곡진 역사를 갖고 있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발전적인 관계를 유지할지는 정권이나 언론인 모두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