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주재 총영사 A 씨가 비서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혐의로 8일 검찰에 고발됐다. “넌 미친 거야” “머리가 있는 거니, 없는 거니” “뇌 어느 쪽이 고장 났어” “개보다 못하다” “강아지 훈련시키듯 해줄까?” 등 수시로 인격모독적인 막말을 했는가 하면 비서의 얼굴에 볼펜을 던지고 티슈 박스로 손등을 때리는 등 폭행을 가했다. 견디다 못한 비서는 지난해 봄부터 1년 6개월간 A 총영사의 폭언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외교부에 제출한 녹음 파일만 40개, 총 20시간 분량이다.
이번 사건은 외교부가 해외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을 대상으로 ‘갑(甲)질 행위’를 신고받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인신매매 혐의로 현지에서 체포된 주멕시코 대사관 영사, 주에티오피아 대사관의 성추행 대사와 행정 직원을 성폭행한 간부급 외교관 등 올 들어 확인된 추태만 해도 차고 넘친다. 외교부는 A 총영사 사례 외에 10건을 더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계속되는 북한의 핵 도발로 인해 어느 때보다 외교의 중요성이 커진 마당에 외교관들이 일탈을 일상화하고 있으니 말문이 막힌다.
정권 출범 때마다 외교부는 개혁의 우선순위에 올려졌다. 특히 재외공관은 무사안일과 보신주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교민들에게 군림하려는 특권의식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 초 “사무실에서 에어컨만 쐬지 말고 밖에 나가 기업을 위해 세일즈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개혁은 외교부의 집요한 부처이기주의에 밀려 흐지부지돼 온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강(强) 대사 인선에서 외교관 출신을 배제한 것도 직업 외교관들이 자초한 측면이 작지 않다. 외교관들이 선민의식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감시가 소홀한 재외공관에서 자신의 왕국을 만드는 일은 반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