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채태인은 올 시즌 눈에 띄는 성적을 남기고도 규정타석 미달로 타격순위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늦깎이’ FA로서 아쉬울 법도 하지만 그는 건강히 한 시즌을 보낸 것에 만족감을 내비쳤다. 스포츠동아DB
넥센 1루수 채태인(35)은 11일 현재 올 시즌 104경기에서 타율 0.322, 12홈런, 59타점을 기록 중이다. 규정타석에 미달해 타격 랭킹에선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삼성에서 넥센으로 이적한 첫 시즌이었던 지난해(124경기·타율 0.286·7홈런·72타점)와 비교하면 올해도 변함없이 견고한 활약을 펼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채태인은 총 370타석에 들어섰다. 정규시즌 종료 시점의 규정타석은 446타석이다. 넥센이 11경기만을 남겨두고 있어 그가 규정타석을 충족시키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규정타석을 채운다면 20위권의 타율이다. 그러나 미련은 없다. 그는 “올해 목표는 별다른 게 없었다. 아프지 않기만을 바랐다. 규정타석에 못 들어가지만, 이 정도로도 만족한다”고 밝혔다.
잘 알려진 대로 채태인은 2001년 부산상고를 졸업한 뒤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가 2007년에야 KBO리그에 데뷔했다. 해외파 특별지명을 통해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부산 토박이인 그에게 대구는 ‘제2의 고향’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두고 투수 김대우(29)와 1대1로 트레이드돼 넥센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구자욱을 새로운 프랜차이즈 스타로 키우려던 삼성의 구상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흘렀다. 아직은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채태인은 “삼성에서 밀려난 게 맞다. 어차피 구자욱의 자리를 마련해줘야 했으니까. 아쉬움은 없다”며 ‘쿨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넥센 채태인. 스포츠동아DB
채태인을 감쌌던 어두운 그림자는 이적만이 아니다. 부상은 지난 수년간 그를 괴롭혀왔다. 가장 큰 부상은 2010년 8월 26일 대구 두산전 도중 파울 타구를 잡으려다 넘어지면서 당한 뇌진탕이다. 그 후유증으로 2년 넘게 고생했다. 2013년부터 가까스로 정상을 되찾았으나, 이번에는 왼쪽 무릎에 탈이 났다. 그는 “지난 2년간 무릎이 안 좋아서 신경이 쓰였지만 올해는 경기 도중 자질구레하게 다친 것 말고는 큰 이상이 없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올해는 건강을 회복했다. 그는 “아프지만 않다면 다른 모든 것들은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FA(프리에이전트) 자격도 다 채웠다”며 웃었다.
부상이 없었다면 이미 행사했을 FA 권리다. 그런데 11시즌이 걸렸다. 남들보다 출발이 늦었던 만큼 더욱 간절했을 텐데, 30대 중반이 돼서야 기회를 얻었다. 그러니 FA 신청 여부를 놓고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는 “FA 진로를 어떻게 예상할 수 있겠나. 그래도 보상금은 적다. 올해 연봉이 3억원이다. 다만 올해는 유독 FA들이 많다”고 얘기했다. 시장 상황에 맞춰 심사숙고해 FA 권리 행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의미다.
그에 앞서 지금 당장은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집중해야 한다. 넥센(66승2무65패)은 5위 SK(68승1무64패)에 1.5게임차로 뒤진 7위다. 최근 5연패로 다급해졌다. 그는 “이제 팀이 포스트시즌에 갈 수 있느냐만 남았다. 포스트시즌에서 활약해 몸값을 높이겠다는, 그런 생각은 없다. 앞서 얘기한 대로 올해는 ‘아프지 말자’는 목표를 이미 이뤘기 때문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재우 전문기자 ja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