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수 헌재소장 동의안 부결]충격의 여권… 對野 강경모드로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수석·보좌관회의가 끝난 직후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을 보고받은 뒤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한 참모는 “굉장히 굳은 표정이었다. 크게 화가 났다는 걸 표정으로 읽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김 후보자 부결에 대한 청와대 반응을 박수현 대변인보다 격이 높은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이 직접 발표할 것을 지시했다.
청와대는 윤 수석에 이어 전병헌 정무수석비서관까지 나서 새 정부 출범 이후 가장 강한 어조로 야당을 비판했다. 이대로 가면 야당에 정국 주도권을 내줄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었다. 여기에 북핵,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 외교·안보 이슈 대처 과정에서 발생한 지지층 이탈을 막고 인사 파문 책임론을 차단하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 그러나 여소야대라는 현실적인 제약을 뛰어넘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 청와대의 고민이다. 일각에선 청와대가 말로만 협치를 외쳤지 진심으로 야당을 설득했느냐는 자성론도 나온다.
○ 사법 개혁 제동에 격분한 靑
청와대가 날 선 반응을 내놓은 것은 이날 부결을 김 후보자 개인에 대한 반대는 물론 새 정부가 추구하는 사법 개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5월 직접 기자회견에 나서 “다양한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국민의 여망에 부응할 적임자”라며 김 후보자 지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이어 김 후보자까지 낙마하면서 새 정부의 사법 개혁은 일단 브레이크가 걸릴 수밖에 없게 됐다. 이대로 가다간 12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도 간단치 않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회법에 따라 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은 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지 20일 이내에 처리하는 게 원칙이지만, 김이수 후보자 부결 후폭풍을 고려해 각 당이 동의안 표결일 자체를 잡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지지율에 취해 위기 직시 못했다는 자성론도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김 후보자 부결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보복이고, 정권교체에 불복하려는 것 아니냐”며 청와대와 주파수를 맞췄다. 친문(친문재인) 핵심인 김경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낡은 것은 여전히 죽지 않았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며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탓에 여전히 위기임을 잊고 있었던 건 아닌지 뼈저리게 반성하게 되는 오늘”이라고 말했다. 이번 국면을 통해 ‘개혁 대 적폐’라는 프레임을 더욱 강조해 문재인 식 국정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것이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