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부흥 꿈꾸는 청파-서계동 봉제거리
5분거리 남대문시장 전성기땐 새벽에 가져온 디자인 아이디어, 오후 샘플 만들고 밤에 제품 판매
의상학과 학생들에 봉제기술 전수… 고가 기계 市 지원받아 공동 이용

35년 경력의 락어패럴 이상태 대표가 주머니를 만드는 웰팅기와 인터로크 기계를 작동해 보이고 있다. 소상공인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서울시가 지원해 구입했다. 이 기계들은 중고가도 대당 1700만 원이어서 영세업체가 개별 구매하기는 어렵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6일 오후 만난 해성패션 김덕순 대표(56)는 “원단이 중국에서 들어오는데 사드 영향으로 대량 수입할 수 없어 어려움은 있다”면서도 “그래도 한국의 봉제기술은 중국이 따라올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봉제업은 이제 끝난 것 아니냐’는 세간의 평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자신감이었다. 35년 넘게 여성복을 제작한 김 대표는 “색감과 디자인에서 우리나라 옷 제조업은 강점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자라, 유니클로 같은 외국 업체가 패스트패션(빠르게 제작하고 바로 유통시키는 트렌드)을 내세우지만 이곳, 청파동 서계동 봉제공장 거리야말로 원조 패스트패션 클러스터였다. 남대문시장에서 차로 5분 거리인 이 거리의 공장들은 새벽에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가져오면 오후에 샘플을 제작하고 밤중에 남대문시장에서 팔았다. ‘반응이 오는’ 제품은 더 만들고 소비자의 의견에 따라 제품이 달라지기도 했다.
서울신용보증재단도 자영업 협업모델 사업 차원에서 외국에서만 생산되는 고가의 기계들을 구입하는 데 힘을 보탰다. 봉제공장 거리의 사단법인 한국봉제패션협회 공동사무실에 주머니 웰팅기와 원단 끝부분에 실밥이 날아다니지 않도록 마무리하는 인터로크 기계를 들여놓았다. 매일 평균 8개 업체가 찾다가 최근에는 18개 업체가 공동사무실을 찾아 기계를 사용한다. 이런 식으로 업체당 한 달에 최소 20만 원씩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 당초 옷감 패턴을 뜨는 캐드(CAD) 기계 구입을 지원받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캐드작업 전문 업체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함께 쓸 수 있는 기계로 정했다.
인근에 서울로 7017이 개장하면서 봉제공장 거리는 제2의 부흥을 꿈꾸고 있다. 이 대표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봉제품을 볼 수 있는 쇼룸과 청년 디자이너들이 패턴을 디자인할 수 있는 공동작업실이 마련된다면 더욱 활기를 되찾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