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가정이 위기일때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그런데 엄마와 민철이가 원하는 대로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타임머신을 타고 아빠가 주식을 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거나 어디선가 큰돈이 뚝 떨어져서 빚을 다 갚고 이전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뿐이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계속 아빠를 원망하며 사는 것은 아이에게 끔찍하리만큼 불행한 삶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시련은 아이에게 되도록 주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미 발생했을 때는 부모가 무엇보다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아이들은 경제적 위기도 위기지만 그것 때문에 부모가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을 더 괴로워한다. 아직 어리고 가치관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아이 앞에서 부모가 심하게 싸우는 건 좋지 않다. 아니,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일이다.
살면서 모든 상황을 예측할 수는 없다. 어느 순간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누구를 만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만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하고 모함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내 뜻대로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원망과 분노에 허우적대며 자신을 포기해 버리면 결과적으로 자기만 손해다. 오히려 바뀐 상황에 가능한 한 빨리 적응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게 지혜로운 처사이다.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부모가 직접 아이를 앉혀놓고 이렇게 얘기해준다면 좋겠다. “정말 미안하게 됐구나. 내 행동을 변명할 생각은 없어. 그저 너는 이번 일을 통해 꼭 배웠으면 좋겠다. 한 번의 실수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 말이야.” 혹은 “정말 미안해.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시켜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은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 우리 함께 이 위기를 잘 이겨내 보자” 하면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으면 한다.
부모가 이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아이는 무엇을 도와주어야 하는지 등도 되도록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그래도 원망은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불안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고, 자기 자신을 망치는 행동까지는 하지 않는다. 위기를 이겨내는 부모의 행동에서 배우는 바도 생긴다. 무엇보다 이렇게 해야 최소한 가정의 위기가 아이의 위기로 번지는 일은 막을 수 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