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보와 상황 앞에서 기존생각 수정 ‘여우’형과 자기편견 강화 ‘고슴도치’형 특정편향에 기운 예측 오류로 위기의 ‘신호’ 놓쳐선 안돼 “사실관계 변하면 생각 바꾼다”… 케인스의 오랜 충고 기억하길
고미석 논설위원
이솝 우화다. 종종 부정적 역할로 나오곤 하는 여우가 여기서는 위험신호를 재빠르게 포착하는 지혜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20세기 정치 사상가 이사야 벌린도 ‘고슴도치와 여우’란 글에서 많은 것을 두루 아는 다원주의자의 이미지로 여우를 빗댔다. 이에 대비해 고슴도치는 한 가지를 깊이 아는 일원론자.
이를 기원으로 한 분류법이 다양하게 파생되었다.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도 그 하나다. 위대한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여우가 아니라, 큰 그림을 파악하고 이를 단순화시켜 집중한 고슴도치형이라는 주장이다.
방대한 데이터에서 새로운 결과가 나오고 상황이 달라지면 기존 생각을 유연하게 수정해야 예측 결과도 실제와 가까워진다. 한데, 자기 비판적 태도와 회의적 자세를 가진 여우와 달리 고슴도치형은 얕은 지식과 과도한 자신감에 의지해 업데이트를 외면한다. 경험에서 배우는 여우는 정확도가 높아지고, 애초 설정한 전제에 집착한 고슴도치는 그와 정반대다. 눈앞에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면 이를 되레 자기 편견을 강화하는 쪽으로 조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큰소리치는 유형이다.
보수 진보 정권 할 것 없이 북핵위기 예측에 무능한 것을 보면, 한국 사회의 큰 취약점은 고슴도치형이 득세하는 풍토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짐작하게 된다. 적어도 여우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안다. 고슴도치는 제 아는 것밖에 모른다. 누가 뭐라면 가시 돋은 몸을 웅크려 전투모드로 들어간다. 자기 방어 방식이다. 예측의 한계를 아는 여우보다 호언장담 밀어붙이는 고슴도치가 한국사회에서는 유독 더 선호된다. 허장성세라도 그건 나중 일이고, 현실에서 주목받으려면 그게 더 잘 먹힌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6차 핵실험을 축포 삼아 맞은 정권수립 기념식에서 북녘의 3대 세습 통치자는 “주체혁명의 최후승리는 확정적”이라고 선언했다. 남조선 따위는 이제 상대할 ‘깜’도 못 된다는 그 거만함이 구축되기까지 오랜 세월 한국 사회는 안이한 판단으로 줄곧 위기 예측에 실패를 거듭해 멍석을 깔아준 셈이다. 일방적 폭력에 맞설 최소한의 대응조차 ‘사드 보복’의 해괴한 해코지로 중국에 희롱당하는 지경이 됐다. ‘소음’에 가려진 뚜렷한 ‘신호’를 무시한 참화라 할 만하다.
합리적 예측의 전제는 무엇보다 자기 갱신이다. 사드 배치에 대해 대통령 스스로가 입장을 전환한 마당에도 집권당은 맹신의 담장 밖으로 발을 떼려 들지 않는다. ‘신호’가 달라져도 여전히 보고자 하는 것만 본다. 전술핵 배치와 사드 배치 무용론은 불변의 결론이고 ‘대화’와 ‘평화’를 그 들러리로 세운다.
특정 편향에 사로잡혀 잘못된 확신을 억지로 고집하고 이해다툼의 전략으로 활용하는 이 좁은 땅의 고슴도치들. 그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오래된 충고가 있다. “사실관계가 변하면 나는 내 생각을 수정한다.” 20세기 새로운 경제학의 틀을 만들어낸 경제학자 존 케인스가 이념 대결의 파도 속에서 보낸 필생의 현장 경험 끝에 추출한 결론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