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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충장로 광주극장… 임검과 자유석의 기억

입력 | 2017-09-14 03:00:00


광주 충장로 광주극장에 전시 중인 영사기. 1950, 60년대에 사용한 것이다. 오른쪽 사진은 1층 임검석 입구.

“임검 나왔습니다.” 1970년대 전후 통속소설에 종종 나오는 말이다. 임검(臨檢)은 행정기관 직원이 현장에서 조사하는 일을 뜻한다. 소설 속 임검 장소는 주로 여관 버스터미널 등이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속, 임검. 그 오래된 용어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광주시 동구 충장로 광주극장. 1935년 10월 문을 열었으니 이제 개관 82주년. 3개 층 856석에 스크린이 하나다. 대기업 복합상영관이 거의 전부인 요즘, 단관 극장은 매우 희귀한 존재다.

광주극장은 개관 당시부터 ‘조선 제일의 대극장’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1968년 화재가 발생했다. 절도범이 전기모터를 훔치는 과정에서 불이 나 건물이 대부분 타버렸다. 지금의 극장 건물은 그때 다시 지은 것이다.

극장 곳곳엔 세월의 흔적이 가득하다. 외벽에 거는 영화간판은 아직도 경력 30년의 영화 간판 전문화가가 직접 그린다. 안으로 들어가면 ‘영화는 광고 없이 정시에 시작합니다. 상영관은 하나입니다. 지정좌석제가 아닙니다…’라고 쓰인 안내판이 있다. 표를 끊고 들어가 원하는 자리 아무 데나 앉으면 된다. 건물 내부엔 광주극장의 역사를 담은 사진과 옛 영화의 포스터 입간판 등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 올라가면 큼지막한 영사기 두 대가 눈에 들어온다. 1950, 60년대에 사용했던 것이다.

이곳엔 출입문이 참 많다. 1, 2, 3층에 출입문이 무려 13개. 1층 중앙 출입문 옆엔 비밀스러운 문이 하나 더 있고 그 위에 ‘임검석’이라고 쓰여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1층 관람석 뒤쪽으로 연결되어 1층이 한눈에 들어온다. 1970년대 이곳에선 학생주임 교사나 경찰들이 청소년들의 영화 관람을 지도, 단속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 시절엔 그랬다. 광주극장의 임검석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제 경찰은 영화나 공연의 내용을 검열하고 한국인들을 감시하기 위해 임검석을 요구했다.

1935년 서울엔 스카라극장이 생겼다. 그 스카라는 2005년 건물 철거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82년 된 극장이, 옛 전통을 지켜내며 스크린 하나에 의지해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10월이 되면 광주극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개관 82주년 기념 영화제를 연다. 내년에도 10월은 또 찾아올 것이고, 벌써부터 ‘광주극장 100년’이 기다려진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