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안보리 제재 사흘만에 미사일 도발]문재인 정부 ‘대화-제재 병행’ 혼선 자초
15일 북한 김정은이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 도발을 감행한 직후 문재인 대통령은 곧바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 소집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미 오전 5시경부터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임박했다는 보고를 받은 상황. 한 시간 뒤 이낙연 국무총리와 함께 ‘청와대 지하벙커’로 불리는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에 들어선 문 대통령은 미간을 찌푸린 채 단호한 어조로 “북한의 도발에 분노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 냉·온탕 오가는 대북 메시지
문 대통령은 그간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줄곧 강조하며 북한 붕괴를 연상시키는 언급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전날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사뭇 톤이 달랐다. 문 대통령은 14일 오후 미국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대화로 나올 경우 양자회담 또는 다자회담을 비롯한 다양한 대화 방안을 갖고 있다”고 했다. 비록 북한이 핵·미사일을 동결하는 등 “스스로 대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대화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하루 사이에 냉·온탕을 오가는 듯한 문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에 김정은의 핵폭주를 가뜩이나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 사이에선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느냐는 말이 나올 법하다.
특히 문 대통령은 전날 오전 이미 북한의 도발 징후를 보고받고 현무-2 미사일 발사 훈련 등 무력시위를 사전 재가한 상황이었다. 통일부 역시 북한의 도발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청와대의 승인하에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 계획을 14일 오전 발표했다. 왜 하필 이 시점이냐는 지적이 나왔던 건 기우가 아니었던 셈이다.
○ 지지층 의식한 행보란 비판도
문 대통령의 헷갈리는 대북 메시지는 지나치게 지지층을 의식하는 데서 비롯됐다는 해석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경 대응에 호응하다가도 ‘사드 불가’를 외쳤던 촛불 민심과 대북 정책의 변화를 원하는 지지층을 의식해 대북 유화 메시지를 틈틈이 낼 수밖에 없다는 것.
실제로 7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발사 후 문 대통령은 베를린구상과 전쟁불가론을 강조하고 나서 한미 공조를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어 6차 핵실험 이후엔 다시 강경 기조를 이어가다 전술핵 재배치 불가와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 결정에 나섰다.
미국에서도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레이스 최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14일(현지 시간)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 도중 한국의 대북 인도적 지원 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자 “한국 정부에 문의하라”며 즉답을 피했다. 대북 지원 사업에 관해 불편한 심정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문병기 weappon@donga.com·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