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AI 비서 어디쯤 오고 있나
AI 비서 경쟁, 삼성 참전 예고
카카오도 AI 스피커 ‘카카오 미니’로 맞불을 놨다. 카카오는 18일부터 AI 플랫폼 ‘카카오 I(아이)’를 적용한 이 제품의 사전판매에 들어간다. 음원업계 1위인 ‘멜론’의 1년 스트리밍 이용권을 제공하고 예약판매 가격을 정가의 절반 수준인 5만9000원으로 맞추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두 회사의 사업 영역은 조금 달랐다. 네이버는 검색과 쇼핑, 카카오는 메신저와 콘텐츠 위주였다. 그런 두 회사가 AI 분야에서 맞붙었다는 사실은, AI가 그만큼 분야를 가리지 않고 파고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분야와도 결합해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플랫폼인 것이다.
올해 초에는 국내 통신사끼리 AI 스피커를 놓고 맞붙은 적이 있다. 지난해 SK텔레콤이 ‘누구’를 출시한 데 이어 올해 1월 KT가 ‘기가지니’를 내놓은 것이다. 각자 보유한 인터넷TV(IPTV) 및 음원서비스 등과 연동해 각자 15만∼2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상태다. TV 조작, 날씨·교통 정보 제공, 스케줄 확인 등의 기능은 이제 쇼핑과 금융 분야까지 넓어졌다. 진짜 큰 변화는 내년에 올지도 모른다. 바로 삼성전자가 AI 스피커 발표를 예고해둔 상태이기 때문.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은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서 갤럭시 노트8 공개 직후 “AI 스피커를 하만과 함께 개발하고 있으며, 내년에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의 참여가 주목받는 이유는 특정 서비스에만 강점을 가진 지금까지의 참여자들과 달리 전방위적 사업 분야를 가진 종합가전·IT 업체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부터 TV와 냉장고, 간편결제, 자동차 전장(電裝) 부품에 반도체까지 다양한 분야에 AI를 접목할 수 있고 쉽게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 삼성은 국내보다는 해외 시장에 초점을 맞춘 제품을 만들겠지만, 국내 시장에 미칠 영향도 클 수밖에 없다.
부품·네트워크·커머스… 모든 게 AI 비서 중심으로
AI 비서 혁명은 해외에서는 몇 년 전부터 진행돼 왔다. 스피커 형태로는 아마존 ‘에코’(알렉사 적용)와 구글 홈(구글 어시스턴트 적용)이, 스마트폰 내장형으로는 애플 ‘시리’와 삼성 ‘빅스비’가 경쟁 중이다. 아직까지 이들 서비스는 영어 위주여서 국내에 큰 시장은 없지만 LG V30에 첫 한글버전 구글 어시스턴트가 탑재되고 SK㈜ C&C는 미국 IBM의 AI ‘왓슨’을 기반으로 ‘에이브릴’을 발전시키고 있어 점점 국내로도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가트너는 세계 AI 스피커 시장 규모가 2015년 3억6000만 달러(약 4079억 원)에서 연평균 40%씩 성장해 2020년에는 21억 달러(약 2조3789억 원)로 483.3%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외 대표 통신·IT업체들이 AI 비서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플랫폼을 장악하기 위해서’다. AI 비서가 사람 말을 더 잘 알아듣게 될수록 서비스의 경계를 가리지 않고 플랫폼이 AI 비서로 통합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가장 대표적인 AI 음성비서인 ‘아이언맨’ 시리즈의 ‘자비스’를 떠올리면 쉽다. 아이언맨은 슈트 작동과 통신 연결, 정보 검색, 보안 업무까지 어떤 지시든 자비스를 통해서 한다. 자비스를 운영하는 회사가 따로 있다면, 이를 통해 엄청난 수익모델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AI 비서의 발달과 함께 스마트폰에서 ‘앱(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이 많다. 앱은 서비스별로 따로 존재하는데, 말만으로도 특정 기능을 실현시킬 수 있는 단계가 되면 ‘서비스’는 남아도 ‘앱’은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하드웨어와 부품도 이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 미국 애플이 12일(현지 시간) 공개한 아이폰 10주년 기념 모델 ‘아이폰X’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스마트폰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부품) ‘A11’은 AI용 연산장치가 내장된 것이 특징이다. 중국 화웨이도 2일 IFA에서 AI용 연산장치가 내장된 모바일 칩셋 ‘기린 970’을 발표했으며, 다음 달 공개하는 자사 스마트폰에 탑재할 계획이다. 이들 부품은 이미지 처리와 고용량 데이터 분석에 최적화된 성능을 제공한다.
이들 연산장치는 물론이고 축적된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에도 엄청난 저장용량이 필요한데, 결론적으로 그 재료인 반도체가 더 많이 쓰일 수밖에 없다. 이미 진행 중인 반도체 호황은 이런 움직임에 힘입은 바가 크다. AI 처리에는 고성능 반도체가 요구되기 때문에 반도체 기술 경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단말기(스피커, 스마트폰) 판매 이외에 AI 비서로 직접 돈을 벌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는 금융과 유통 서비스가 꼽힌다. “엄마한테 10만 원 보내줘”, “A회사 주식 100만 원어치 살게”라는 말만으로 바로 송금 및 거래가 되거나 “빨래 세제 좀 주문해줄래?”라는 말로 바로 상품이 배송되는 시기가 오면 현재 금융·유통 구조는 대대적 변화를 맞을 수밖에 없다. 최근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매각설이 나오던 자회사 SK플래닛의 오픈마켓 ‘11번가’에 대해 “매각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것도 11번가가 향후 AI 비서를 통한 전자상거래에 대비한 중요 자산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도 새 사업 분야가 탄생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목소리’. 지금도 내비게이션 안내 멘트를 연예인이 녹음한 버전으로 바꿀 수 있는 것과 비슷하게 AI 비서 목소리를 아이돌이나 배우 목소리로 바꾸는 것이 새 수익모델이 될 수도 있다. AI 비서의 모든 말을 직접 녹음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목소리 조합 기술이 더 발전해야겠지만 조만간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AI와 연결된 TV에서 AI 비서의 아바타가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 캐릭터도 아이돌의 형태로 바꾸거나 새 캐릭터를 탄생시킬 수도 있다. 최근 SK텔레콤이 SM엔터테인먼트와 상호 계열사 지분 인수를 통해 콘텐츠 사업 협력 방안을 발표한 것도 AI에 한류 콘텐츠를 결합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이다. 더 발전하면 영화 ‘그녀(HER)’에서처럼 인간과 AI가 사랑에 빠지는 일이 없으리라는 장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생태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면 적응해 번성하는 종과 그렇지 못하고 도태되는 종이 나오게 마련이다. 국내외 기업들은 ‘예고된’ 생태계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공룡의 커다란 덩치가 바뀐 환경에서도 공룡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사실상 올해는 국내 AI 비서 ‘빅뱅’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누가 적응에 성공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