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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눈]‘실험실’ 투자는 곧 일자리 창출

입력 | 2017-09-18 03:00:00


박천홍 한국기계연구원 원장

최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로봇과 인공지능의 활용이 점점 커지면 사람들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 소멸에 대한 불안을 촉발한 것은 세계경제포럼(WEF)이다. WEF는 2016년 ‘직업의 미래’ 보고서에서 2020년까지 5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자리 소멸에 대한 우려는 산업혁명 시기마다 반복됐다. 산업혁명 초기 방직산업이 성장하면서는 농부를, 자동차가 발달하면서는 마부를 내쫓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7일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초연결과 초지능을 기반으로 한 지능화 혁명의 시대에 대응하는 전략 가운데서 특히 ‘일자리 이동’에 대한 전망에 공감한다.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공포보다는 일자리가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공장 자동화를 불러왔던 컴퓨터수치제어(CNC) 기술이 제조업 현장에 도입됐을 때를 예로 들어보자. 사람이 직접 기계를 다뤄 제품을 만들던 전통적인 제조업 현장에 CNC가 도입되자 많은 인력이 CNC로 만든 제품의 품질을 관리하고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드는 쪽으로 이동했다. 이는 제조업 전반의 품질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흐름이 됐다.

스마트 팩토리같이 공장의 자율화, 지능화 물결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CNC뿐 아니라 조선과 반도체 같은 기존의 주력 산업도 혁신과 변화에 직면했다. 3차원(3D) 프린팅, 산업용 협업 로봇, 클라우드 장비시스템같이 새로운 장비들이 출현하면서 제조업에도 고도화의 바람이 부는 것이다. 단순, 반복적인 업무는 자동화되고 고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창의적인 업무’로 재편되는 현상이 뚜렷해질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일자리의 이동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방법이다. 답은 명료하다. 새로운 기술에 먼저 투자하고 빠르게 이를 받아들인 나라와 사회에서만 좋은 일자리로의 이동이 나타난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와도 생산자와 소비자는 분명히 나뉜다. 기술의 진보를 통해 일자리 이동에 대응하지 못하면 새로운 시대에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의 역할에만 머물 수 있다.

정부 출연연구기관은 기업이 선뜻 나서지 못했던 새로운 기술에 먼저 뛰어들었고, 그렇게 확보한 신기술을 사회에 확산시키는 선봉에 서 왔다. 정부가 연구개발 투자로 실험실을 키우면 여기서 기술이 탄생하고, 기술이 다시 사회로 진출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새로운 기업까지 만들어 낸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를 첨단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여 고부가가치를 만드는 체질로 개선한다.

4차 산업혁명의 근간으로 여겨지는 ‘인더스트리 4.0’을 주창한 독일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2013년 인더스트리 4.0 추진안을 발표하고 추진하면서 정작 중소기업 등 산업 전반에서 이를 수행할 역량이 부족한 현상이 나타났다. 그 대책으로 표준화, IT 보안 등 연구개발에 더 많이 투자했다. 이는 제조업을 고도화해 독일의 세계 경제 주도권을 놓지 않도록 했을 뿐 아니라 관련 인력을 양성해 일자리를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듯 정부의 투자는 인력구조를 결정짓는다.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을 비롯한 다수의 연구기관은 ‘기술혁신을 위한 투자’는 국가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데 25%나 기여한다고 분석했다. 이 비중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확대되고 있다. 연구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는 목표했던 눈앞의 연구 성과뿐 아니라 그 과정에 참여하는 일자리 생태계를 만들고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 즉 실험실에 대한 투자는 국가 경제 성장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를 넘어 그 자체가 일자리 창출 방안인 셈이다.

박천홍 한국기계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