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동 경제부 차장
최근 정부의 공공 부문 채용 확대 계획을 보며 이 얘기를 떠올린 사람이 제법 있었을 것이다. 마틴 포드의 ‘로봇의 부상’ 서문에 나오는 일화다. 실제 정부가 요즘 일을 너무 쉽게 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일자리가 부족하면 공공기관들에 많이 뽑으라 하고, 비정규직이 불쌍하면 싹 다 정규직으로 만들어준다. 청와대의 일자리 상황판 숫자만 늘릴 수 있다면 정말 청년실업자에게 삽자루든 숟가락이든 나눠주고 땅을 파게 할지 모른다는 걱정도 든다. 너무 무리한 상상일까.
앞으로 고용은 정부가 아무리 쥐어짜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일자리를 잠식하는 요인은 많지만 가장 결정적인 게 로봇의 등장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스타트업은 햄버거를 1시간에 360개나 만들 수 있는 기계를 내놨다. 이 회사 사장은 “이 로봇은 종업원을 돕기 위해 만든 게 아니다. 종업원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단언했다. 로봇은 단순반복 업무만 담당할 테니 내 일자리는 괜찮다는 건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는 소리다. 요즘 로봇은 손수 클래식 음악을 작곡하고, 교수를 대신해 에세이 채점도 한다. 노동의 질은? 다들 인간의 작품이라 속았을 정도였다.
모순된 지시는 상사의 특권이라 했던가. 일자리위 홈페이지에는 위원장(대통령)의 다짐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일자리는 늘리고, 고용의 질은 높이겠다.’ 마치 ‘증세 없는 복지’급의 난제를 풀기 위해 정부는 공공 일자리 확대, 최저임금 인상이란 액션플랜을 내걸었다. ‘소득-소비-생산-고용’이 차례로 증가하는 선순환을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이클은 기대와 달리 역류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근로자의 생산성은 로봇에 밀린다. 생산성을 높이지 않은 채 임금만 올린다면 노동시장의 진입 장벽만 높여 고용의 빙하기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의 고용정책이 현재 상황을 고집한다면 로봇과의 ‘일자리 전쟁’은 인간의 완패(完敗)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누굴 때려잡아 없는 일자리를 억지로 만들 때가 아니다. 로봇시대에 대비해 고용정책의 패러다임을 모두 재점검해야 한다. ‘숟가락으로 땅파기’식 해법만 고집한다면 머잖은 시기에 로봇 뒤에서 손가락만 빨게 될 수도 있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