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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9>빌게이츠와 김정은

입력 | 2017-09-19 09:00:00


“Capitalism has worked very well. Anyone who wants to move to North Korea is welcome.”(자본주의는 잘 작동하고 있다. 북한으로 옮겨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한번 해봐라).

자본주의의 정점인 미국의 최고 갑부가 미사일을 펑펑 쏘아 올리는 세계 최악의 독재 국가에 대해 한 말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정치적 외교적 발언은 거의 하지 않는데 도저히 북한에 대해건 참을 수 없었나 봅니다. ‘어번 딕셔너리’(Urban Dictionary·도시의 사전)의 빌 게이츠 발언록에 나온 내용인데요. 2012년 영국 강연 때 “한국과 북한을 비교해보라. 남한은 엄청난 발전을 이룩한 자본주의의 증거다. 북한은 핵무기 밖에는 관심 없는 독재자가 지배하는 나라다. 당신은 어느 나라에 가고 싶은가”라고 물었죠.

빌 게이츠가 “북한은 갈만한 나라가 아니다”고 설파한 바로 그 해 권력을 잡은 김정은. 최고지도자가 된 뒤 쉬지 않고 핵과 미사일 위협을 일삼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일본 홋카이도 상공을 통과하는 미사일을 쏘아 올렸죠. 당시 기자는 일본 여행 중이었는데 정말 난리가 났습니다. 아침부터 휴대전화로 긴급재난문자가 몇 번씩 울려 잠이 깼습니다. 호텔에서 TV를 켜니 모든 채널이 북한 속보를 전했죠.

북한 미사일은 별로 놀랍지 않았지만 일본의 철저한 준비정신, 완벽한 대비요령은 놀라웠습니다. 한편으로는 감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왜 이리 호들갑이지. 일본 상공 통과가 처음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일본은 북한이 조용할 때조차도 북한에 관심이 많습니다. 북한이 조용할 때도 신문과 방송에선 김 씨 일가 권력 구조부터 납북 일본인 문제까지를 다양하게 다룹니다. 일본이 평소 북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실제로 일이 터지면 재빨리 대응할 수 있는 거겠죠.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실험을 하면 즉각 미국 사회는 동요합니다. 아직 북한 미사일의 미국 본토 도달 능력이 없는데도 말이죠. 북한 뉴스가 쏟아지는 것은 물론 희극적 외모와 포악한 성격의 김정은은 오락 토크쇼나 코미디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면 한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있을 때마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느낌입니다. 북한 미사일이 거의 일상화되다 보니 “또 쐈나보다” “며칠 있으면 잠잠해지겠지”하며 지나치는 경우가 적지 않죠. 일본과 미국은 흥분하는데 정작 북한을 코앞에 둔 우리의 무관심은 뭔가 잘못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워싱턴 특파원 시절 한 미국 기자가 한 얘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몇 년 전 북한의 핵위협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한국에 가보고 쇼크를 받았다고 합니다.
“한반도에는 두 가지 미스터리가 있다. 국제사회의 엄청난 비난과 제재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핵무기에만 목매다는 북한, 그리고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불바다 전쟁 위협을 해도 너무나 평온한 한국. 한국이 더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