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효서 작가의 단편소설 ‘별명의 달인’에는 중학생 시절 친구들의 특징을 기가 막히게 잡아내 별명을 붙이는 ‘라즈니시’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라즈니시는 별명에 대해 친구들에게 따로 설명을 하지 않지만, 다른 친구들은 모두 그 의미를 단번에 이해했다. 토를 달지도 않았다. 그 만큼 절묘한 별명 짓기의 달인이랄까. 작가는 라즈니시가 ‘상대를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알았기 때문에’ 별명을 잘 지었다고 설명한다. 소설 속에는 ‘구절판 개고기’나 ‘개발길질’, ‘나무젓가락1’, ‘나무젓가락2’ 같은 독특한 별명이 나온다.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작명’한 것이거나, 어쩌면 작가의 학창 시절 실제로 주변에서 불렸던 친구들의 별명일지도 모르겠다.
▷온갖 별명이 난무하는 학교만큼 별명이 많은 곳이 정치계다. 정치인에게 별명은 양날의 칼 같은 존재다. 대중에게 인지도를 높일 수도 있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도 있어서다. 대부분 정치인은 긍정적, 부정적 의미의 별명 한 두 개씩은 갖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이니’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답답하다는 의미에서 ‘고구마’나 ‘고답이’라고 불렸던 것이 한 사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한 때 잘 나갈 때는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지만, 당선된 후에는 ‘수첩공주’나 ‘불통공주’가 별명이었다. 정치인 별명은 대부분 대중이나 언론이 붙여준 것이다.
▷다른 사람의 별명을 직접 만드는 정치인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라즈니시 같은 ‘별명의 달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적(政敵)들에게 별명을 붙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성격이나 외형적 특징을 잡은 별명이 아니라, 깎아내리기 위한 별명이라는 점이 라즈니시와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화당 경선 토론에서 마코 루비오 플로리다주 상원의원을 ‘꼬마 마코(Little Marco)’라고 불렀다. 지명도가 낮다는 것을 비꼰 것이다. 테드 크루즈 텍사스주 상원의원은 ‘거짓말쟁이 테드(Lyin’ Ted)‘라는 별명을 붙였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는 ’비뚤어진 힐러리(Crooked Hillary)‘ ’썩은 힐러리(Rotten Hillary)‘라는 별명으로 이메일 스캔들 등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공격했다.
▷트럼프의 트윗 이후 미국 소셜네트워크사이트(SNS)에서는 해석이 분분했다. 가사 중 ’혼자서 도화선에 불을 붙인다(Burnin‘ out this fuse, up here alone)’는 부분이 김정은을 빗댄 것이라는 의견도 있고, ‘화성은 애 키우기 적당한 곳이 아니야(Mars ain’t the kind of place to raise your kids)‘라는 구절을 ’북한은 애 키우기 적당한 곳이 아니야(N.K. ain‘t the kind of place)’라고 해석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엘튼 존의 명곡을 김정은과 비교해 망쳐버렸다’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나온 것을 보면, 이번에는 별명을 썩 잘 붙인 것 같지는 않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