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라 죄송합니다]취준생들 다시 만나보니
○ 와 닿지 않는 정부의 일자리 정책
14일 다시 만난 취준생 임우영 씨(24·충북대 토목공학과)의 생활은 본보 기자가 처음 만난 3월과 비교해 달라진 게 없었다. 그는 여전히 매일 도서관에서 인적성검사 문제집을 풀거나 자기소개서를 나흘에 한 번꼴로 완성해 원서를 넣는 일을 반복했다. 임 씨는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 제 취업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며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도 좋지만 민간기업이 일자리를 많이 늘려야 하는데, 정부가 이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정윤식
취준생 135명에게 ‘청년 일자리 확대를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을 묻자 ‘규제 완화 등을 통한 민간기업 활성화’라는 응답(41.5%)이 가장 많았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이 달갑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 정부의 블라인드 및 합동 채용엔 부정적 의견도
취재팀이 다시 만난 취준생들은 현 정부의 청년 일자리 정책에 ‘청년의 목소리가 빠졌다’고 하소연했다. 블라인드 채용 확대나 공공기관 합동채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에 대한 불만이었다.
광주 건강보험공단 인턴으로 일하며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 중인 선석 씨(26·전남대 사학과 졸업)는 블라인드 채용을 생각하면 오히려 ‘불안하다’고 했다. 그는 “취지는 나쁘지 않지만 면접 시 정말 블라인드인지 의구심이 크다”고 했다. 취준생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역차별’이다. 공대생은 건설사 지원 시 기사 자격증이 있으면 가산점을 주기 때문에 1년간 휴학하고 자격증을 2개 정도 따는 일이 많다. 취준생 최원기 씨(25)는 “블라인드 방식의 자기소개서만 보고 1차 당락을 결정하면 열심히 준비한 사람은 뭐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문재인 정부는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모든 공공기관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윤재
○ 그래도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
취준생의 절반 이상인 54.1%는 ‘청년 취업 문제가 앞으로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청년이 선호하는 기업들이 대규모 신규 채용에 나서지 않는 데다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취업을 미루면서 청년 고용 지표들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송동준
8월 최악의 실업률을 현 정부의 책임으로만 볼 수는 없다. 정책 효과가 나타나려면 최소 6개월 뒤 지표를 봐야 해서다. 그럼에도 민간 채용을 확대하려면 기업들의 불확실성을 줄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국의 사드 보복 여파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기업이 채용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책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주는 등 정책적 보완이 있어야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빼곡한 삼선 슬리퍼… 청년들 “올해가 기회, 친구 절반이 공시 준비”▼
노량진 공시생 학원가에선
같은 시간 동작경찰서 앞 카페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대화 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자리마다 트레이닝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공시생들이 가득했다. 실전처럼 시간을 정해놓고 문제를 함께 푸는 ‘스터디 모임’도 눈에 띄었다.
정부가 ‘공공 일자리 81만 개 확충’을 공언하면서 청년들 사이에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8월 청년실업률이 18년 만에 가장 높은 9.4%를 기록하는 등 갈수록 취업여건이 나빠지자 ‘기댈 곳은 공무원시험’뿐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경일대 사회복지학과 4학년 박경옥 씨(22·여)는 올해 상반기까지 일반 사기업 취업을 준비했지만 현재는 공무원 시험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 박 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친구들이 절반은 되는 것 같다”며 “주변에서 ‘올해가 기회’라며 공무원 시험 준비에 나선 친구가 많다”고 말했다.
학원가에서도 이런 움직임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교육업체들은 앞다퉈 공시생 대상의 추가 커리큘럼을 준비하고 시험 설명회를 여는 등 ‘특수’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의 기대감만큼 현장에서 취업난 개선을 체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공부문만 준비하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며 “청년들의 기대만큼 큰 일자리 공급은 없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지금 이루어지는 공공부문 일자리는 신규로 만드는 것이 있지만 기존 비정규직을 전환하는 자리도 있다”며 “청년들이 공공부문 일자리만 염두에 두고 ‘고시 낭인’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민관 일자리의 균형을 맞추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지선 aurinko@donga.com·김동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