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무궁화
‘끝없이 핀다’는 뜻을 가진 무궁화. 역경 속에서 살아남는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산해경에 등장하는 훈화초는 무궁화의 다른 이름이다. 무궁화의 다른 이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목근(木槿) 혹은 근수(槿樹)다. 그래서 중국 당나라에서는 신라를 근화향(槿花鄕)이라 불렀다. 동국이상국집에 따르면 무궁화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무궁(無窮) 즉, ‘끝없이 핀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무궁(無宮) 즉, ‘옛날 임금이 이 꽃을 사랑했으나 궁중에는 없다’는 뜻이다.
무궁화의 꽃은 배롱나무의 꽃처럼 100일 정도 핀다. 그러나 한 송이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든다. 무궁화 꽃의 이러한 특성은 무궁화에 대한 인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무궁화를 부정적으로 보았던 사람들은 무궁화의 조개모락(朝開暮落)을 쉽게 변하는 조령모개(朝令暮改)에, 무궁화 꽃의 진딧물을 쉽게 공격당하는 대상에 비유했다. 무궁화를 긍정적으로 보았던 사람들은 통꽃에서 단결과 협동심을, 여름철 한 그루에서 100여 일간 3000송이 이상 피는 꽃에서 인내와 끈기 및 진취성을 부여했다.
나는 무궁화의 정신을 ‘무궁’의 철학에서 찾는다. 특히 무궁화의 ‘무궁(無窮)’은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太極旗)와 관련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무궁은 ‘무극(無極)’의 의미이고, 무극은 곧 태극을 뜻한다. 무극과 태극은 중국 북송시대 주돈이(周敦이)가 ‘태극도설’ 첫 문장에서 언급한 대로 만물을 창조하는 원리다. 따라서 무궁화도 만물을 창조하는 원리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가 강대국의 틈에서도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무궁화의 정신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주역의 ‘계사전(繫辭傳)’에서 언급한 대로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가기(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때문이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