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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30승 투수, 영웅에게 홈런 선물

입력 | 2017-09-19 13:49:00


미키 맨틀. 뉴욕 양키스 홈페이지




“(뉴욕) 양키스는 미키 맨틀 때문에 이기는 거야.”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중에서

네, 그렇게 데릭 지터(43) 이전에 미키 맨틀(1931~95)이 있었습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 스위치 타자’(상대 투수에 따라 타석 방향을 바꾸는 타자)로 손꼽히는 맨틀은 1951년부터 1968년까지 양키스에서만 뛰었고, 그가 뛰는 동안 양키스는 월드시리즈에서 7번 우승했습니다. 맨틀은 여전히 통산 월드시리즈 최다 홈런(18개) 기록 보유자입니다.

올해 이승엽(41·삼성)이 그런 것처럼 맨틀도 1968년 먼저 은퇴를 예고한 뒤 경기를 치렀습니다. 그해 양키스가 속한 아메리칸리그 최강팀은 디트로이트였습니다. 이 팀 에이스 데니 맥클레인(73)은 현재까지 메이저리그 역사상 마지막 30승 투수로 남아 있습니다. 1968년 오늘(9월 19일) 두 선수는 디트로이트 안방 구장 ‘타이거 스타디움’에서 마지막 맞대결을 벌였습니다.

데니 맥클레인. 디트로이트 홈페이지




디트로이트가 6-1로 앞선 8회초 맨틀이 마지막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디트로이트 포수 짐 프라이스(76)가 마운드로 올라갔습니다. 경기장을 찾은 관중 9063명이 맨틀에게 기립박수를 보낼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준 것. 그때 맥클레인이 프라이스에게 말했습니다. “하나 선물하면 어떨까요?” 여기서 선물은 홈런이었습니다.

프라이스는 자기 자리로 돌아와 타석에 있던 맨틀에게 “선물 하나 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맨틀은 믿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그럴 만했습니다. 맥클레인은 투구 솜씨는 빼어났지만 사생활에는 문제가 있던 투수였으니까요. 맥클레인은 은퇴 후에 마약 소지, 횡령 등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렸는데 현역 시절에도 승부욕 때문에 괴팍한 행동을 벌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프라이스가 빙긋이 웃으며 마운드를 바라보자 맨틀도 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몸쪽 높은 공으로 부탁해. 너무 빠르게는 말고.” 그해에 9이닝 당 볼넷을 1.7개밖에 내주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제구력을 자랑했던 맥클레인은 정말 그렇게 던졌습니다. 맨틀이 홈런성 파울을 두 번 날리자, 맥클레인은 더더욱 진심을 담아 느린공을 몸쪽 높게 던졌고, 맨틀은 결국 외야 관중석 2층에 떨어지는 대형 홈런을 날렸습니다.

1968년 9월 19일 경기에서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고 있는 맨틀. 뉴욕타임스 제공



프라이스는 2009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맨틀이 베이스를 도는데 맥클레인이 박수를 치더라. 2루 베이스를 돌 때 (2루수) 댁 매컬리피(1939~2016)가 따라서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나중에는 모든 팀원들이 박수를 보냈다. 맨틀은 홈플레이를 밟고 나서 내게 고마워했다”며 “그런데 다음 타자 조 페피톤(77)이 ‘나도 하나 달라’고 얘기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당신은 미키 맨들이 아니잖아’하고 답했다. 그래도 맥클레인에게 얘기를 전했는데 머리 쪽으로 위협구가 날아오더라”며 웃었습니다.

그날 에피소드를 적은 맥클레인의 사인볼. 맥클레인은 “맨틀은 내 영웅(idol)이지만 조는 아니었다”고 적었습니다. 




이날 경기는 결국 디트로이트가 6-2로 이기면서 끝났고 맥클레인은 완투승으로 시즌 31번째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경기 후 인터뷰실로 들어오는 그에게 기자들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평소 언론과 사이가 나빴던 선수에게는 드문 일. “일부러 홈런을 맞아준 거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전력을 다해 던졌지만 맨틀이 정말 잘 쳤다”“고 답했습니다.

맥클레인이 맨틀에게 홈런을 선물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당시 그가 통산 534홈런으로 지미 폭스(1907~67)와 동률이었기 때문. 이 통산 535호 홈런으로 맥클레인은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홈런 역대 공동 3위(당시 기준)에서 단독 3위로 올라섰습니다. 맨틀은 이튿날 안방 경기에서 생애 마지막 홈런을 날리면서 통산 536홈런(현재 18위)으로 커리어를 마감했습니다.


맥클레인은 1975년 자서전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Nobody’s Perfect)‘를 펴내면서 이날 포수가 당시 디트로이트 주전 안방 마님이던 빌 프리한(76)이었다고 잘못 적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 에피소드가 세상에 나올 때마다 진짜 이날 포수였던 프라이스가 아니라 프리한이 등장하곤 하죠.

짐 프라이스. 디트로이트 스포츠 캡처




은퇴 후 18년 동안 TV 해설위원으로 활약한 프라이스는 ”그 전에도 그 이후로도 은퇴를 앞둔 위대한 타자에게 그런 선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다른 선수들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미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한 상태였고 경기에서도 크게 이기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홈런을 치라고 공을 던진다고 다 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게 다 잘 맞아떨어진 날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 우연이 바로 우리가 필연적으로 ’야구의 낭만‘을 사랑하는 이유일 겁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