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으로 국가경쟁력 UP]<3> 日, 지자체 주도로 중소도시 부활
4일 일본 도야마현 도야마시 도심순환형 트램이 퇴근길 시민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2009년 말 운행을 시작한 이 전차는 도야마시 도심이 활력을 되찾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도시재생의 원동력이 됐다. 도야마·나가오카=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인구 감소, 경기 불황과 급격한 고령화 등으로 한때 ‘일본의 그늘’로 불리던 서부 일본 지역이 도시재생으로 활력을 되찾고 있다. ‘도시 소멸’의 위기까지 겪었던 이들 지역은 2000년대 들어 생활 여건 개선을 위한 도시재생사업을 본격 추진했다. 그 결과 도야마(富山), 나가오카(長岡) 등의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젊은이가 돌아오고 상권이 되살아나고 있다.
○ 신(新)교통수단으로 시작된 ‘도야마형 도시재생’
2009년 완공된 도야마 도심순환형 LRT는 도야마 시민의 발이자 도시재생의 출발점. 도야마에서는 1990년대 ‘마이카(My car)’ 시대와 함께 도심 인구가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도심 공동화(空洞化) 문제가 심각했다. 이에 시는 중심시가지를 순환하는 3.4km 길이의 환상(環狀) 트램을 대안으로 내놨다. 시는 각 LRT 역을 중심으로 3380ha의 ‘거주 추진지구’를 지정했다. LRT 역 반경 500m에 주거지를 조성해 차 없이도 주요 시설을 걸어서 이용하도록 만드는 게 목표였다. 이곳에 집을 짓는 건설사에는 채당 70만 엔(약 707만 원)의 보조금 등이 주어졌다.
예산이 도심에 집중되는 데 대한 교외 주민의 반발도 있었지만 시장까지 나서 100여 차례 주민회의를 열며 설득했다.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남아있는 인구마저 흩어지면 도시 전체가 저밀도 슬럼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득했다. 사에키 데쓰야 도시정비부 계장은 “100년 뒤에도 존속할 도시를 만들겠다는 시의 의지를 주민들에게 알렸다”고 말했다.
도야마는 연도별 전입인구가 전출인구에 못 미치는 ‘인구 유출’ 도시였지만 2006년부터는 전입이 전출을 앞질렀다. 특히 20대에 고향을 떠났던 40, 50대 중장년층이 돌아오는 ‘U턴 현상’이 두드러졌다. 후나다 야스히로 도시정비부 차장은 “세수가 크게 늘면서 지금은 19억 엔(약 191억9000만 원) 규모의 ‘도시정비기금’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시민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도심에 만든다”
5일 오후 ‘아오레’ 시청사를 찾아 담소를 즐기고 있는 나가오카시 시민들의 모습. 시청은 건물 사이의 광장을 유리로 덮어 눈, 비가 오는 날에도 시민들이 찾아와 휴식할 수 있게끔 했다. 시청이 시민생활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도야마·나가오카=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시는 2012년 도심에서 2km 떨어진 시청사를 이곳(옛 시민회관)으로 옮겨 왔다. 인구 27만 명의 중소도시로서는 131억 엔이 들어가는 이 사업이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도심 백화점 8곳 중 7곳이 문을 닫을 정도로 도심 쇠퇴가 심각해진 상황에선 극약처방이 불가피했다.
유명 건축가 구마 겐고 씨가 맡은 청사 설계는 철저히 ‘도심 유동인구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 본청사의 10여 개 실, 보조청사인 ‘오테도리 빌딩’의 3개 층을 시민 공간으로 무료 개방했다. 이 빌딩에는 각종 강연과 ‘어린이대학’ 등이 열리는 ‘마치나카 캠퍼스’를 뒀다. 유동인구를 늘리기 위해 청사 자체도 3곳으로 나눴다. 가와카미 도루 중심시가지정비실 주사는 “시민센터의 경우 민간사업자와 은행, 시가 공동 개발해 각자 등기하는 ‘민관 합동’ 방식으로 시 부담을 줄였다”고 말했다.
변화는 도심 상권에서부터 나타났다. 중심시가지 91ha 지역의 점포 수가 2010년 995개에서 지난해 1363개로 6년 새 37% 늘어났다.
시 관계자들은 사업의 성공 요인에 대해 “청사 이전 그 자체보다 ‘시민들이 어떻게 이곳(신청사)을 좋아하게 만들지’가 중요했다”고 입을 모았다. 사이토 다쓰요시 시민협동과 실장은 “청사를 짓기 전 도심에 임시 개방 공간을 마련해 시민들이 그곳을 활용하는 방식을 1년여간 관찰했다”며 “그 결과를 마치나카 캠퍼스에서 열리는 복지 프로그램 등에 반영했다”고 소개했다.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를 여럿 만들어낸 일본에서는 시민들이 먼저 지자체에 재생 방안을 제안하고 스스로 이끌어 나가는 경우도 흔해졌다. 나가하마시의 경우 1988년부터 시민들과 지자체가 1억3000만 엔을 모아 철거 위기의 옛 건물 ‘구로카베’를 사들였다. 이들은 ‘부수지 않고 고친다’는 원칙으로 이 건물을 유리공예품점으로 개조했다. 이후 지역 기업의 자발적인 기부로 ㈜구로카베가 설립되면서 2006년까지 29곳의 점포를 추가로 매입했다. 여기에서 파생된 나가하마의 마을 만들기 조합만 10여 개에 이른다.
20년째 마을 만들기에 참여하고 있는 야마자키 씨(73·여)는 “평범한 주부였던 내가 내 고장을 살리는 데 헌신할 수 있게 됐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나가하마 마을만들기㈜의 요시이 시게히토 코디네이터는 “주민 주도로 사업이 이뤄지면서 ‘가족들이 정착하기에 적합한 마을을 만들자’는 공감대가 강하게 형성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도야마·나가오카·나가하마=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