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경제부 차장
이날 김 부총리는 “저출산 문제는 아동수당 신설 하나, 고용정책 하나만으로 해결될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랏돈을 무작정 투입하는 것만으로 저출산 문제를 풀 수 없다는 뜻이다. 포퓰리즘식 예산 퍼주기에 선을 그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문제는 이번 사립유치원 대란을 포함해 보육예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김 부총리가 말로만 나설 뿐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보육정책은 2012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소득 하위계층에 제한적으로 지급됐던 보육비는 그해 최초로 0∼2세, 5세에 대해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지원됐다. 이 과정에서 예산 편성을 진두지휘했던 게 당시 기재부 예산실장이던 김 부총리다.
여당과 정부의 예산 갈등을 조율하는 것은 예산실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하지만 당시 김 부총리는 반대만 하고 대안은 내놓지 못했다. “정부 원안에 양보는 없다”며 준(準)예산 집행 가능성을 언급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2011년 12월 31일 0∼2세 전 계층 무상보육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5세에만 주기엔 너무 적고 0∼5세에게 다 주기엔 지나치게 많으니 0∼2세 및 5세를 대상으로 하겠다는 ‘정치 공학적’ 배려가 담긴 결정이었다. 이런 기형적인 무상보육 확대안을 그대로 받아들인 게 김 부총리였다.
더 놀라운 일은 이듬해에 벌어졌다. 무상보육 확대안에 도장을 찍고 차관으로 승진한 김 부총리가 기재부에 복지 태스크포스(TF)를 꾸린 뒤 “(무상보육 확대안으로) 재벌 손자도 혜택을 본다”며 차등지원 방침을 밝힌 것이다. 금방이라도 무상보육이 축소될 듯 보였지만 역시나 말뿐이었다. 국회에서 반대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야당은커녕 여당과도 조율을 하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지원이 끊기는 거냐”며 불안해했지만 김 부총리는 침묵했다. 이는 논란만 일으켰을 뿐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국회가 다시 무상보육 확대안을 제시했고 김 부총리는 못 이기는 척 도장을 찍는 것으로 일단락했다. 무상지원에 맞춰 보육 시스템의 전면 재설계가 이뤄졌어야 할 골든타임이 그렇게 허비됐다.
김 부총리가 ‘나라살림 지킴이’라는 명성을 얻는 사이 학부모들은 수년간 보육료 지원이 중단되진 않을까 마음을 졸여야 했다. 해마다 보육예산이 연말 벼락치기로 결정되다 보니 일선 현장에서는 변변한 연간 계획을 짤 엄두를 내지 못했고, 지방자치단체들은 교육교부금 집행을 못 하겠다며 매년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고 있다. 보육료로 이렇게 큰 혼란을 겪는 나라에서 어떻게 국민들에게 아이를 낳자고 설득할 수 있겠는가. 책임 있는 재정 당국 수장이라면 동화책을 읽어주기 전에 반성문부터 썼어야 했다.
이상훈 경제부 차장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