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 progress is neither automatic nor inevitable. Every step toward the goal of justice requires sacrifice, suffering, and struggle.’(인류의 진보는 자동적이지도 않고 필연적이 것도 아니다. 정의라는 목표를 향한 한 걸음 한 걸음은 누군가의 희생, 고통, 투쟁을 필요로 한다.) -미국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있는 미국 영화나 노래가 있습니다. 그 영화나 노래가 만들어진 미국에서는 인기가 별로인데 말이죠. 한국인의 감성, 정서에 잘 어필하기 때문일 겁니다.
미국 유학 시절 ‘레옹’이라는 영화가 한국에서 큰 인기를 모았죠. 영화에 나온 배우, 의상, 사운드트랙까지 한국에서 화제였죠. 그런데 프랑스 감독이 미국에 진출해 만든 이 영화는 정작 미국에서 시큰둥한 반응을 얻었습니다. 아니 사실은 혹평을 받았습니다. 한 영화평론가가 “말도 안 되는 스토리”라고 단칼에 평가 절하한 게 기억납니다.
한국에서 샌델 교수의 ‘정의 열기’가 활활 타오르고 있을 때 워싱턴 특파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예상외로 잠잠했습니다. 물론 샌델 교수가 들고 나온 정의라는 개념은 미국에서 독특하고 신선한 것이어서 주목을 받긴 했죠. 유투브에 보면 하버드생들이 올린 샌델 교수의 정의 수업 동영상도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처럼 미국에서 세간의 화제는 아니었습니다.
아마 미국은 그다지 정의로운 나라가 아니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아무리 죽을 지경으로 아파도 비싼 사립보험이 없으면 병원에 못갑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오바마케어’라고 가난한 사람들도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려고 했지만 어마어마한 사회적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정의라는 개념에 큰 가중치를 두지 않습니다. 대통령도 정의를 외치지 않습니다. 열심히 정의를 외치는 건 킹 목사 같은 인권운동가들입니다.
반면 많은 한국인에게 정의라는 개념은 왠지 가슴에 와 닿습니다. 오랜 독재 시절을 경험했고 압축 고속성장으로 빈부격차가 뚜렷해서 그런가요. 왠지 정의라는 단어만 들으면 가슴이 뜁니다. 현 정부도 정의 실현을 중대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샌델 교수가 기뻐할 듯 합니다.
그러나 킹 목사가 말했듯 ‘정의를 실현하는 길은 험난’합니다. 또 국민들은 국가가 실현하고자 하는 정의가 과연 정말로 정의로운 것인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