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원은 여기저기 공짜 선물을 돌렸다.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은 예산으로 이들의 선물값을 대신 치렀다. 4년 동안 무려 5000만 원이 넘는다. 경북 청송군에서 벌어진 일이다.
경북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일 청송사과유통공사 임직원에게 금품을 받고 군의원 등의 선물용 사과 값을 지자체 예산으로 대납토록 한 혐의(뇌물수수 및 업무상 횡령 등)로 한동수 청송군수(68)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한 군수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뇌물공여 등)로 유통공사 임직원 5명과 자신의 선물 값을 군에 떠넘긴 혐의로 청송군의원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청송사과유통공사는 2011년 8월 특산물인 사과의 생산과 가공, 판매 등 유통 체계 개선과 농가 소득 향상을 위해 설립됐다.
한 군수는 2014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유통공사 사장에게 명절 떡값과 해외여행 경비, 주택 신축 축하 등의 명목으로 19차례에 걸쳐 3250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주로 군수 사무실에서 돈을 받았고 유통공사 임직원이 직접 전달했다.
한 군수는 또 2012년 7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군의원들이 지인들에게 보낸 사과 값 5300만 원어치를 군 예산으로 대신 내도록 했다. 2013년 설 추석 때 국회의원 명의로 사과 1376만 원어치를 지인들에게 보내고 지자체 홍보용으로 보낸 것처럼 허위 공문서를 만들어 예산을 지출했다. 한 군수도 2011년부터 최근까지 사과 2278상자를 자기 명의로 지인들에게 선물로 보내고 군 예산 1억1130만 원을 집행토록 했다.
한 군수는 군의원의 청탁을 받고 군 장학생 선발 자격을 2차례 바꿔가며 그의 아들을 선발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학 재학 때 청송군 장학생으로 선발된 이 아들은 공무원에 특채돼 근무 중이다.
경찰 조사 결과 한 군수는 2014년 6월 지방선거 때 청송군 공무원 400여 명의 성향을 조사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공무원 50여 명을 따로 분류한 ‘청송판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군수 사무실에 둔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는 인사 불이익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군수는 경찰 조사에서 “작성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당시 선거 캠프에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술했다. 한 군수는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도 모두 부인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소속 공기업을 감독해야할 단체장이 지속적으로 뇌물을 챙기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불법과 부실을 초래한 사건”이라며 “지역 토착 비리 근절을 위해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구=장영훈기자 j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