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성범죄, 이곳 조심!]올 1∼8월 서울 293개역 전수조사
이용객이 많은 환승역은 성범죄의 단골 무대였다. 고속터미널, 여의도(59건), 신도림(55건), 노량진(45건), 사당(35건) 등 성추행 발생 상위 5곳은 모두 환승역이다. 홍대입구를 비롯해 몰카범이 자주 출몰하는 강남(45건), 고속터미널(44건), 서울역(40건), 신도림(35건)도 환승역이었다.
○ 고속터미널역, 성범죄 발생 1위 ‘오명’
20일 오전 서울 지하철 7호선 고속터미널역에서 환승하려는 승객들로 에스컬레이터가 붐비고 있다. 지하철 3개 노선이 교차하는 이 역은 유동인구가 항상 많으며 올해 서울 지하철역 중 성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이다. 김동혁 기자 hack@donga.com
고속터미널역은 3호선과 7호선, 9호선이 교차하는 교통 요지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출근시간대(오전 8∼10시) 평균 1만6000여 명, 퇴근시간대(오후 6∼8시) 2만600여 명이 고속터미널역을 이용한다. 주민도 있지만 상당수는 환승객이거나 인근 백화점과 고속버스터미널 이용객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역무원들은 7호선에서 3, 9호선으로 갈아타는 구간의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이 다른 곳에 비해 긴 편이라 성범죄가 많은 것으로 분석했다. 이 구간은 30도 경사의 에스컬레이터가 최대 19.2m에 걸쳐 운행된다. 서울지하철경찰대 고속터미널출장소 관계자는 “출퇴근시간에 환승구간을 기점으로 사복을 입고 집중 순찰을 벌이면서 적발 건수가 늘어난 점도 있다”고 말했다.
홍대입구역은 지난해에도 몰카 범죄 1위였다. 지난해 94건이 벌어졌는데 올해는 연말에 110건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20일 찾은 홍대입구역 승강장 대형 스크린에는 몰카 집중 단속 기간을 알리는 문구가 선명했다. 홍익대생 강모 씨(22·여)는 “젊은이들이 몰리는 유흥가이다 보니 몰카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지하철을 탈 때마다 특별히 신경쓴다”고 말했다.
홍대입구역에서 몰카 범죄가 제일 잦은 곳은 9번 출구 계단이다. 이 출구는 홍대 클럽 거리를 가장 빨리 갈 수 있어 젊은이들이 몰린다. 9번 출구 앞 패스트푸드점은 유명한 만남의 장소다. ‘불타는 금요일’을 즐기려는 20대들을 노린 몰카범이 기승을 부린다. 지난달 4일에는 퇴근길 홍대입구역 9번 출구 계단에서 회색 원피스를 입은 여성의 치마 속을 찍던 회사원 정모 씨(42)가 붙잡혔다.
올 들어 성범죄가 한 건도 없었던 지하철역도 118곳이나 된다. 대부분 수도권 외곽 주거단지이거나 환승역이 아닌 단일 노선이다. 환승역 중에서 ‘성범죄 청정지대’는 광운대, 김포공항, 중랑, 석계, 수서 등 10곳이었다. 채정수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 부대장은 “외곽의 지하철역은 승차 인원이 적은 데다 성범죄자도 통상 집 근처에서는 범행을 꺼리는 성향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추행은 대부분 해당 지하철역을 지나는 전동차 안에서 일어난다. 이를 막을 최적의 수단이 폐쇄회로(CC)TV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서울지하철 1∼8호선 중 전동차에 CCTV가 설치된 곳은 2, 7호선뿐이다. 5, 6, 8호선은 전동차 1대에만 있고 1, 3, 4호선은 아예 없다. CCTV가 설치된 전동차는 전체의 30%에 못 미친다. 설치된 CCTV도 대부분 10년 가까이 운영된 것으로 화질은 형체를 분간할 정도다.
그나마 전동차 내부 CCTV 설치는 2013년부터 중단된 상태다. 서울시 시민인권보호위원회가 인권 침해 요소가 있다며 중단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지하철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2015년 2월 이후 출시되는 전동차에는 CCTV를 반드시 설치하도록 법이 바뀌었지만 그 이전 차량에는 아무 조치가 없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노후 전동차에 고화질 CCTV를 설치하려면 차량 개조비용을 포함해 1대에 1억 원씩 필요하다”며 “예산 요청이 계속 후순위로 밀려 현재로선 2015년 2월 이전 차량에 CCTV를 설치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