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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술’ 글 남기자 1분도 안돼 “비밀 채팅방으로 오라”

입력 | 2017-09-21 03:00:00

마약거래 온상 된 데이팅앱 들어가보니




20일 해외 메신저 대화방에 접속한 기자가 마약 구매 의사를 밝히자 상대는 가격과 판매 방식을 알려왔다.

“그제부터 ‘마수대’가 난리예요. 빨리 채팅방 없애고 텔레그램으로 옮겨요.”

상대방의 문자에는 잔뜩 긴장감이 느껴졌다. ‘프로’의 냄새도 났다. 경찰 마수대(마약수사대) 같은 표현이 쉽게 나왔고 익숙한 듯 텔레그램 ‘망명’을 알려줬다.

18일 낮 12시 즉석만남 애플리케이션(앱) 대화방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다. 여성으로 위장한 기자가 방 이름을 ‘시원한 술’로 입력하자 1분도 안 돼 남성이라고 밝힌 A 씨가 메시지를 보냈다. 시원한 술은 필로폰을 뜻하는 은어다. A 씨는 마약을 함께 투약하기 위해 접근한 것이다. A 씨는 곧바로 텔레그램(암호화된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옮기자고 유도했다. 전날 같은 앱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큰아들이 마약 투약을 같이할 사람을 찾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A 씨를 따라 텔레그램 채팅방에 접속했다. 1분이 지나면 대화 내용이 자동 삭제되도록 설정됐다. A 씨는 자신을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30대 남성이라고 소개했다. 6개월 전부터 10일에 1번씩 필로폰을 투약한다고 밝혔다. 동반 투약자 ‘검증’은 까다로웠다. A 씨는 기자에게 ‘마약을 주사기로 투약했냐, 흡입했냐’ ‘1회에 얼마나 투약했냐’ 등을 꼼꼼히 물었다. 마약 관련 ‘은어’를 어떻게 알았는지도 질문했다. 비공개 번호로 전화를 거는 치밀함도 보였다. 그러면서 A 씨는 “경찰의 위장수사가 많다. 적발되면 구속될 가능성이 높아 까다롭게 인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채팅방을 만들고 만남 약속을 잡기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채팅앱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을 통한 마약 거래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마약을 지칭하는 ‘시원한 술’ ‘얼음’ ‘작대기’ 같은 은어로 검색하면 마약 거래 관련 글과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구매자는 판매자가 올려둔 텔레그램 아이디(ID)로 접촉해 대화를 주고받는다. 거래가 성사되면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이 오간다. 마약 전달은 던지기(특정 장소에 숨기면 구매자가 찾아가는 거래)가 고전적이나 소량인 경우 택배를 많이 이용한다.

마약거래를 하며 성관계가 가능한지를 묻기도 했다. A 씨는 만남을 약속하자 키와 몸무게, 가슴 크기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마약을 투약한 뒤 성관계를 할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외모를 알고 만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튜브에서도 검색 한 번이면 마약 판매상들이 올린 수십 개의 영상과 글을 볼 수 있었다. 한 영상에는 판매자가 직접 마약 제조 기계를 사용해 마약을 만드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영상에는 판매자의 텔레그램 아이디와 함께 ‘샘플 가능, 당일 가능’이라는 광고 글이 있었다. 이를 보고 메시지를 보내자 5초 만에 ‘필로폰은 1g에 70만 원이고 입금은 비트코인으로 받는다’는 답장이 도착했다. ‘(경찰 단속이 심해져) 던지기는 당분간 힘드니 택배로 보내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새벽에 입금하면 당일 배송도 가능하다. 1통(10g)을 한 번에 구입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부추겼다.

검경 마약 합동수사반에 따르면 온라인 마약사범 검거자는 2012년 86명에서 2016년 1120명으로 4년 만에 10배 이상 급증했다. 거래 수법도 은밀하고 교묘해지면서 수사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거래는 대부분 텔레그램 등 암호화된 공간에서 진행되고 인증 절차 중 수상한 점이 생기면 곧바로 접속을 끊는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장은 “온라인에서는 범죄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덜하기 때문에 마약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며 “해당 사이트의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국제 공조를 더 공고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