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영 정치부 기자
한국당 의원들에게 그 존재감은 더 했을 것이다. 당이 위기에 처하면 ‘박근혜’만 쳐다봤다. 선거 때는 박 전 대통령의 일정팀을 통해 지역에 한번 들러 달라 읍소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보수 정당에선 ‘박근혜 없는 보수’를 상상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이 넘었다. 한국당도 박 전 대통령에게 자진 탈당을 권유하겠다고 나선 마당에 ‘아직도 박근혜 얘기냐’고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또다시 꺼내든 이유는 한국당 의원들 사이 ‘박근혜 없는 보수’에 대한 오해가 있어서다. 박 전 대통령을 떠나보낸 뒤 보수층을 붙들 무기를 아직 장착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통 지지층의 이탈에 대한 불안감도 엿보인다. 출당 문제가 공식화된 뒤 한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의원은 “지금 한국당 지지율이 누구 지지율인 줄 아느냐. 박근혜 지지율이다”라고 말했다.
이보다 더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이 보수 정치 내 역동성을 없앤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지배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새누리당(현 한국당)은 ‘공포정치’로 적막했다. 2015년 ‘유승민 사태’로 표출됐듯 다른 목소리는 곧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한 전직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의 친필 서명이 적힌 시계를 의원들에게 몇 개 더 나눠주자는 건의도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말하기가 어려워 보고서로 썼다”고 털어놨다. 보수의 미래가 될 인물도 키우지 않았다. 정당 최고 지도자로서 역대 대통령이 모두 해왔던 역할을 방기한 셈이다.
그렇기에 ‘박근혜 없는 보수’는 비단 박 전 대통령의 당적 정리를 뜻하는 게 아니다. 뒤늦게 박 전 대통령을 출당한다고 국정 농단을 막지 못한 구여권의 책임이 자동 세탁되지는 않는다. 손으로 자기 눈을 가리고 “띠리리 리리리∼ 박근혜 없∼다”고 하는 ‘영구 개그’는 이제 국민들에게 안 통한다. 보수 정당은 이제 진정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박정희 보수’, ‘영남 보수’, ‘기득권 보수’와 같이 무언가에 기댄 보수로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 21대 총선도, 20대 대선도 아직은 멀찌감치 있다. 무엇이 두려운가.
홍수영 정치부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