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고에서 열린 ‘메이커톤’ 대회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고 기술실에서 싱가포르 학생(왼쪽, 가운데)과 영등포고 학생이 노트북을 활용해 메이커톤에서 활용할 기술을 함께 실습해 보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에 좁은 골목길이 많던데, 그곳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를 줄일 방법을 찾아보자.”
15일 서울 동작구 영등포고에서 열린 메이커톤(Make A Thon) 대회. ‘서울의 문제를 찾고 해결하라’는 과제를 받은 4명의 학생은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거듭했다. 먼저 이들은 혼잡한 서울의 길모퉁이에서 사람이나 자동차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서울의 문제’로 선정했다. 이를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 다음 단계. 깊은 고민과 논의를 거쳐 길에 전광판을 세우거나 자동차 안에 장치를 설치해 물체가 다가오는 것을 사전에 알려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이들은 이 대회에서 2등을 차지했다.
두 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초면이었다.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싱가포르 학생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한국 학생도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문제 해결’이라는 목표 아래 구글 번역기를 활용하거나 그림을 그려가며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메이커톤을 이끈 김주현 교사(38)는 “다양한 생각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논의하면서 의사소통능력과 협업능력을 기르는 게 메이커톤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 1등은 구급차가 도로에서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한 팀에 돌아갔다. 근방에 있는 신호등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탑재한 구급차를 인식하면 바로 직진 신호로 바뀌도록 한 것이다. 또 신호등에 구급차가 달려오는 차로를 표시해 줘 뒤에서 오는 구급차를 볼 수 없는 차들이 양보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장치도 고안했다.
메이커톤에 참가한 오창진 군(16)은 “암기 위주였던 기술 수업은 재미가 없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 만들고 싶은 것들을 실컷 만들 수 있어 재미있다”며 “컴퓨터공학과나 전자공학과로 진학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고 말했다.
영등포고는 일반고이지만 이번 학기 들어 기술 과목 방과후 수업만 세 개를 개설했다. 기술 과목에 흥미를 느끼는 학생이 많아 지난 학기보다 한 개 반을 더 늘렸다. 김 교사는 “3차원(3D)프린터와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을 직접 목격하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기술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했다. 현재 방과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거울을 통해 날씨 정보와 뉴스를 볼 수 있는 ‘스마트 미러’를 만들고 있다.
팀원들 각자 갖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공유하고 활용하는 메이커톤은 4차 산업혁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 방식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6년여간 700여 명의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메이커톤을 진행해온 숙명여대 교육혁신센터장 이지선 교수는 “학생들이 새로운 걸 만들면서 물리, 수학뿐 아니라 엔지니어링 프로그래밍 디자인 마케팅 등 다양한 요소를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된다”며 “메이커톤은 복합적 문제해결능력을 길러주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