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정재훈 교수-정지우 작가와 ‘성평등 사회’를 말하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가운데)과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오른쪽),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가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도서관에서 만나 최근 여성혐오 현상과 새로운 형태의 성폭력에 대해 대담을 했다. 이들은 “성이 평등한 사회가 곧 지속 가능한 사회”라고 입을 모았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불법촬영(몰래카메라), 데이트폭력 등 새로운 형태의 성폭력도 늘고 있다. 21세기 한국의 남녀는 왜 이런 상황에 처했을까.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18일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54)와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30) 등 두 명의 남성을 정부서울청사로 초청해 여혐·남혐 문제와 새로운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남녀 간 혐오와 증오, 원인이 뭘까?
▽정지우 작가=어느 순간부터 가부장제, 성폭력이 아니라 ‘혐오’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을 주목해 봐야 해요. 예전엔 사회 상층 남성이 사회 하층인 여성에게 수직적으로 폭력을 가했다면 지금은 일부 권력층을 제외하곤 다수의 힘없는 남성이 역시 힘없는 여성을 수평적으로 공격하거든요. 말씀하신 (남성의) 좌절감의 영향이 큰 것이죠.
▽정현백 장관=많은 남성이 여성들에게 자신의 파이를 뺏겼다고 오해하고 있어요. 고시 합격자를 발표할 때면 꼭 ‘여성 합격률이 몇 퍼센트’라고 알려주는데, 이걸 본 다수의 남성은 ‘여성이 저만큼 우리 합격 몫을 뺏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기업 임원으로 올라가면 여성 비율은 2.7%로 떨어지고 여성 고용률이 늘었대도 저임금·임시·비정규직이 늘어난 것에 불과하거든요. 여성의 현실은 여전히 열악한데 말이죠.
○ 몰카, 데이트폭력 등 늘어나는 성폭력
▽정 작가=술자리에서 남편에게 맞는 여성을 보면 대다수의 남성이 나서지 않지만 모르는 남성에게 맞는 여성을 보면 나선다고 합니다. 남성은 자신이 소유한 여성을 폭행할 권리가 있다는 논리예요. 성관계 몰카를 유포하는 사람, 그걸 보는 사람 모두 영상에 나오는 여성은 이미 남성의 것이기 때문에 남성 마음대로 함부로 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요. 결국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라는 전통적 성관념에 기인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정 장관=가장 큰 문제는 이걸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여성가족부가 여성에 대한 폭력 중 가장 용인할 수 없는 게 무엇이냐고 설문했더니 데이트폭력, 가정폭력은 성희롱보다도 낮은 순위로 나왔습니다. 신종 성폭력이 심각한 인권침해이자 범죄라는 사실을 인식시키기 위해 처벌을 강화할 예정입니다. 정부는 젠더폭력방지법(가칭)과 스토킹처벌법(가칭) 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성차별적 사회를 개선하려면?
▽정 장관=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입니다. 피임 방법보다 기본적인 인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해요. 유엔이 진행한 성평등 캠페인 제목이 ‘HeForShe’였던 것처럼 남성들의 협조 없이 성평등 사회 구축은 불가능해요. 우리 부는 적극적인 ‘말 걸기’를 하려 합니다. 여성이 남성에게, 남성이 여성에게 말을 걸고 함께 풀어가는 겁니다. 최근 우리가 발족한 ‘성평등 보이스(boys·voice)’도 그런 목적에서 나온 거고요.
▽정 작가=예전에 남성 청소년들의 성의식을 알아보기 위해 100명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남녀를 구분하는 것은 편견이다’고 생각하는 남학생이 다수라 놀랐던 적이 있어요. 생각보다 우리의 성평등 의식은 깨어 있는지 모릅니다. 다만 사회·문화적 규범이 그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을 뿐이죠. 남녀가 각자의 입장에서 싸우는 말 걸기가 아니라 각자의 입장을 듣고 이해하는 대화의 시간이 많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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