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이동국.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1980년대만 하더라도 축구선수들은 나이 30세 정도면 슬슬 은퇴를 준비했다. 당시 분위기가 그랬다. 서른 넘어서도 현역생활을 하고 있으면 “아직도 뛰고 있냐”는 면박성 질문을 받던 시절이었다. 선수생명이 짧았던 건 팀에서의 선수관리나 선수 스스로의 자기관리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프로시스템의 정착은 곧 선수들의 몸값과 직결된다. 선수들이 몸값을 높이기 위해 관리를 하기 시작했고, 이는 은퇴시점을 늦추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듯 선수생명도 길어진 것이다.
차범근이 1979년 독일 분데스리가 프랑크푸르트와 계약할 당시 26세였다.
K리그의 지표를 살펴보면 요즘 프로선수들이 자기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따르면, 올 시즌 연령대별 득점(9월 19일 현재)에서 30세 이상 선수들이 기록한 득점은 총 137골이다. 전체 468골 가운데 29.3%다. 이 비율은 2008년과 비교해 상당히 높아졌다. 당시에는 30세 이상 선수의 득점이 8.9%(631골 중 56골)에 불과했다. 요즘 서른 넘은 프로선수들의 위상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숫자다.
연령대별 출장에서도 확연한 차이가 난다. 2008년에 30대 선수들이 출장한 비율이 16.5%를 차지한 반면 2017년에는 24.5%로 껑충 뛰었다.
전북 이동국.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이 또한 나이든 선수들이 자리관리를 잘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최근 K리그 이슈의 중심은 전북 현대 이동국(38)이다. 우리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데도 기량이 녹슬지 않았다. 2009년 전북 이적 이후 지난해까지 8년 연속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할 만큼 기복이 없었다. 9월 17일 포항전에서 K리그 최초의 ‘70(골)-70(도움) 클럽(197골 71도움)’의 대기록도 수립했다. 이제 전인미답의 통산 200골을 앞두고 있다.
이동국이 경기장에서 뛰는 걸 보면 자신감이 넘쳐난다. 스스로를 향한 믿음이 가득한 몸짓이다. 8월 중순 신태용 감독이 국가대표팀 선발에 앞서 이동국과 나눈 대화는 의미심장하다. “경기외적인 부분이 아니라 기량으로 진짜 필요하다면 가겠다”고 말한 건 바로 자신감의 표현이다. 정신적인 리더가 아니라 후배들과 경쟁하는 한 명의 공격수로 봐달라는 부탁이었다.
최근 이동국의 인터뷰를 보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어린 나이에 갑자기 스타가 되다보니 자기 밖에 몰랐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베테랑이 되면서 주위를 살피는 모습이 역력하다. 자신의 기록보다는 팀 승리를 생각하는 마음가짐의 변화 또한 선수생명 연장의 한 요소로 작용했으리라. 더 오래 뛰기 위한 자기관리의 중요성을 인생을 통해서 배웠을 것이다. 그게 마음의 평안과 여유로 이어졌다. 기다려주는 감독을 만났고, 그에 보답하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것도 장수의 비결 중 하나였을 것이다.
축구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이동국이 이뤘으면 하는 기록이 있다. 프로축구 역대 최고령 득점이다. 이동국은 38세 4개월 19일로 이 부문 역대 3위다. 최고령 기록은 김기동이 포항 시절인 2011년 7월 9일 대전을 상대로 기록한 골이다. 39세 5개월 27일이다. 김한윤은 성남 시절인 2013년 10월 27일 대구전에서 골을 기록해 2위(39세 3개월 16일)다.
이제 단 1골만 남았다. 전북과 K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 이동국이 전인미답의 고지 200호 골을 향해 다시 뛴다. 29일 제주와 홈경기에서 팀의 우승과 자신의 200호 골을 동시에 달성하는 장면을 그려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이동국이 내년 시즌을 뛰면서 골을 넣으면 이 기록을 갈아 치울 수 있다.
올 시즌에도 베테랑의 품격을 보여준 이동국. 팬들을 위해서라도 더 철저히 자기관리를 하면서 몇 년은 더 뛰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