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前 대법관이 본 ‘시행 1년’ 나도 모르게 김영란법이라고 불러… 주변서 “마음 편하게 해줘 감사” 말해 ‘3·5·10’ 액수는 중요하지 않아
김영란 전 대법관은 “청탁금지법은 처벌하자는 게 아니라 공통의 윤리강령을 만들어 다함께 지키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지난해 9월 28일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의 주역 김영란 전 대법관(61)은 “이제는 체념했다”며 웃었다.
청탁금지법 시행 1년을 앞둔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 개인연구실에서 동아일보와 만난 김 전 대법관은 “누군가를 무분별하게 처벌하자는 게 아니라 공통 윤리강령을 우리 모두에게 내면화하자는 것”이라고 법 취지를 거듭 설명했다.
청탁금지법 때문에 축산·화훼 농가나 서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전 대법관은 “아이를 위해 선생님에게 뭘 해드려야 할지 전전긍긍하던 학부모나 괜한 선물을 받아 오해받지 않을까 걱정하던 선생님 등의 일상 고민을 덜어줬다”고 말했다. 윗사람에게 ‘성의’를 보여야 했던 관행이나 불필요한 회식자리가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길을 오가다 학부모나 직장인 같은 보통사람들에게서 ‘마음 편하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듣곤 한다”고도 했다.
다만 수입에 직격탄을 맞은 화훼, 축산, 요식업계에 대해선 안타까운 마음을 표시했다. 그는 “그동안 보여주기 식으로 소비하던 난(蘭), 한우 같은 고급 선물을 친지나 은퇴한 은사 등 청탁금지법 대상이 아닌 분들께 보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이분들의 ‘희생’을 생각해서라도 청탁금지법은 꼭 성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행한 지 1년이 다 되도록 논란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 데 대해 김 전 대법관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청탁금지법이 꾸준히 회자되다 보니 ‘내가 무심코 하는 일이 괜찮은 건가’라고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게 된다”며 “이 같은 논쟁을 통해 우리 사회를 좀 더 깨끗하게 이끄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영란 전 대법관에게 김영란법이란 무엇이냐’고 묻자 잠시 웃던 그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참석한 국제회의에서 벌어진 일화를 소개했다. 세계 각국의 반부패위원장들이 그에게 오더니 “김영란법이 통과돼 정말 부담스럽겠다”고 위로 겸 응원을 하더라는 것이다. “김영란법으로 불릴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법은 제 손을 떠났지만 결국 제가 계속 평가받을 테니 좋은 법으로 자리 잡길 바랍니다. 더불어 저 스스로를 늘 되돌아보게 하는, 감사한 법이기도 하네요.”